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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통령은 생산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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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통령은 생산직이 아니다

입력
2011.01.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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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얘기하면 집권 4년째는 망가지기 시작하는 해다. 노태우 정권 때 수서비리와 YS와의 대립, YS 때 노동법파동 한보비리와 차남의 전횡, DJ 때 3대 게이트와 아들들 구속 등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허문 일이 대개 이 때를 전후해 일어났다. 지지율도 이즈음에 급하게 하강했다. 물론 초기부터 지지도가 급락, 퇴임까지 제대로 반등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노무현 정부는 좀 다른 경우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하는 사람에겐 레임덕이 없다. 선거 없는 올해는 일하기 가장 좋은 해"라고 의지를 보이지만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4년차 증후군은 과신과 방심보다는, 알다시피 자연스러운 힘의 이동 때문이다. 이건 인간본성이어서 애당초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점에서 MB는 전임들보다 훨씬 불리하다. 그는 대선 승리 직후 "더 이상 국내에 정치적 경쟁자는 없다"는 말로 야멸차게 피아 간에 선을 그었다. 처음부터 여권 내에서조차 세력 간 교집합이 아예 존재하기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정치 않겠다는 MB

서럽게 무시 당하고 구박 받던 며느리가 늙어 힘 빠진 시어미를 배려할 리 없다. MB측으로선 여당의 누가 다음 대선에서 이기든 정권 재창출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더욱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박근혜 대표가 일찌감치 깃발을 세웠다. 손 놓고 있다 당한 지난번의 학습효과일까, 정책팀을 꾸려 조기대세론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4월 재ㆍ보선을 고비로 힘의 중심이 결정적으로 기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야(對野)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1야당 대표가 칼바람 몰아치는 광장에서 구슬프게 트럼펫을 불어대도 MB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천정배 의원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온건한 손학규 민주당대표 입에서 "독재정권" "살아남으세요" "더러운 손" 따위의 독설이 연일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반발심리다. 안팎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는데도 MB는 여전히 정치에 오불관언이다. 심지어 신년연설에 '정치권과 소통강화'라는 문구를 넣으려던 참모는 질책까지 당했다던가. 야당 대표와의 회담이 3년째 열리지 않는 것도 전례 드물다.

MB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건 그 성가신 정치 없이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경제회복, 원전 수주, G20 성공개최 등 적지 않은 업적을 이뤄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다. 정권 내내 활용가치가 있던 이 업적들은 이내 반대세력들의 독한 폄하와 다른 이슈생산에 덮여 한낱 뜬구름처럼 바람에 쓸려가 버렸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렇게 망각됐을 만한 성과들은 결코 아니었다.

올해가 그저 일하기에 좋은 해만도 아니다. 언제나 내부갈등이 더 두려운 남북문제가 당장 비상인 데다 한미FTA 비준, 국방개혁 등 광범위한 설명과 동의를 필요로 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고물가, 구제역, 전세대란 등으로 서민이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는 판국이다. 계절적 요인 등 불가피한 측면들이 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바람에 서민정서는 위험한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

정치 외면해선 업적도 없어

결국 진정성도, 업적도 제대로 평가 못 받아 야속하다면 그건 온전히 정치부재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서민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해봐야 여론을 움직일 만큼은 못 된다. 가장 쉽게 여론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배제하고 왜 효율 낮은 방식에만 매달리는지 모를 일이다.

일 열심히 하는 MB는 올해도 늘 업적생산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또 그걸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은 생산직이 아니다. 뭔가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큰 일은 다른 생각과 이해를 조정, 조율하고 국민정서를 아우르는 일이다. 그게 대통령과 기업인의 다른 점이자, 4년차 함정을 피하고 일한 만큼 평가를 받는 길이기도 하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워밍업을 시작한 이 시점에 이르도록 초기의 같은 충고를 반복해야 하는 심정도 답답하지 그지없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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