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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정부 지원 끊기고…" 흔들리는 의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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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정부 지원 끊기고…" 흔들리는 의과학도

입력
2011.0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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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실험하고 연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이 꿈을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안정된 진로를 버리고 힘든 길을 가기로 했다. 후회하고 싶지 않은데,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꿈보다 현실을 택하라 권한다. 혼란스럽다.’

약속 저버린 정부

아주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허은실(26)씨는 요즘 공부가 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허씨가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마친 뒤 선택한 길은 의과학자(MD-PhD) 과정이다. 함께 사범대를 졸업한 동기들은 대부분 교사가 돼 자리를 잡았다.

“교생실습 때 학생들의 인지구조를 파악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인지과학을 부전공하면서 사람을 연구하려면 의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하지만 목표가 임상의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허씨는 지난해 의전원에 입학해 의과학자 과정에 지원했다. 의과학자 과정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박사학위를 가진 의사를 키우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08년 도입한 제도. 2년간 의학, 3년간 자연과학이나 공학, 다시 2년간 의학 교육을 받는다. 일반 의대 커리큘럼에 추가로 3년을 더 해야 박사학위에 도전할 수 있는 고난도 과정이다. 이 과정 학생은 총 7년의 재학기간 중 6년 동안 등록금과 연구장학금을 지원받는다. 학생 한 명이 1년에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최대 2,5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허씨는 2학기 등록금 1,018만8,000원을 고스란히 자비로 내야 했다. 지난해 9월 연구재단이 “전문대학원 체제를 유지하거나 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할 예정인 학교의 대학원생만 (의과학자로) 선정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의(치)전원 17곳에 보내면서 2010년 의과학자 과정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아주대 의전원은 의대 전환이 최종 확정됐고, 허씨를 포함한 2010년 의과학자 지원생 3명은 이 과정에 남을 건지, 포기할 건지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학생 입장에선 일생을 건 선택이었는데, 정부는 우리에게 아무런 예고 없이 약속을 바꿨어요. 학교에선 계속 지원해주겠다고 하지만, 사정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심적 부담도 크죠. 동기 중엔 연구역량이 뛰어난데도 의과학자 과정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친구도 있어요.”

갈팡질팡 의과학도들

최근 연구재단은 의대로 전환하는 의(치)전원의 2010년 의과학자 지원생들에 대해 탈락을 통보했다. 임인경 아주대 의전원 교수는 “결국 이들에 대한 지원은 학교가 떠안게 됐고, 학교가 경제적 여력이 없으면 의과학자 과정 운영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대로 전환하지 않고 의(치)전원으로 남은 대학은 제주대와 강원대, 가천의대, 건국대, 동국대(이상 의전원), 부산대, 전남대(이상 치전원)의 7곳뿐이다. 의(치)전원 교수들은 “사실상 정부가 의과학자 양성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라며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의과학자 과정이 애초에 정부의 의전원 확산 유도책의 하나로 시작된 데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의과학자 과정은 의전원에 맞춰 설계한 제도라 학제가 전혀 다른 의대에는 지원이 불가능하다”며 “단 2008∼2009년 선정된 90여명은 (의대 전환과 무관하게) 별도로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학생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의대 전환이 확정된 의전원에서 의과학자의 자연과학 박사학위(PhD) 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은 “의과학자 과정에 재학 중인 여러 친구들이 의대로 빠져나가려 하고, 의과학자에 관심 있던 후배들도 마음이 많이 돌아섰다”고 전했다. 결국 의전원-의대 체제를 놓고 정부와 학교가 벌인 줄다리기 사이에서 애꿎은 의과학자 지원생들만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기초와 임상 연결고리

의과학자는 실험실에서 얻은 성과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한다. 기초과학과 임상의학 사이의 다리 역할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양성해온 의과학자는 기초의학의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해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하랄트 주르 하우젠 박사도 의과학자다.

국내 의과학자로 잘 알려진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장은 “의과학자는 생명현상을 세포 수준이 아니라 생체 전체로 확대해 연구한다”며 “생명의학산업이 성장하려면 이 같은 관점이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과학자 과정 활성화를 위해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는 학교에 대해선 인원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올 상반기 중 신규 의과학자 과정 모집 공고가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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