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거리에서 청소년 상담하는 학부모 모임 '좋은세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거리에서 청소년 상담하는 학부모 모임 '좋은세상'

입력
2011.01.19 07:18
0 0

#중학생 박진희(가명)양은 늘 우울했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보며 자랐다. 최근 아빠가 집을 나간 뒤에도 폭력의 기억은 뇌리에 뚜렷이 남아 진희를 괴롭혔다. 매사 소극적이었고 사람을 피했다. 그런데 소녀가 놀라운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다. 거리에서 또래 상담사 봉사활동에 나설 만큼.

#지난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한수미(16ㆍ가명)양은 늘 자신을 탓했다. "난 왕따 당할 만 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교사에게 힘들게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훈계뿐이었다. 결국 가출을 반복했던 소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집으로 돌아왔고 거리 자원봉사에 나섰다. "어른이 되면 꼭 상담사가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들을 변화시킨 것은 지난해 본격 결성된 풀뿌리 모임'좋은세상'. 폭력 없는 평화마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 학부모 회원들이 주축이 돼 길거리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전문가를 포함한 자원 봉사자들이 거리 상담과 축제를 기획해 '남의 집 아이들'의 남모를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방황하던 아이들이 함께 봉사하겠다고 나서기 까지 했다."길에 책상 하나 가져다 놓고 애들하고 놀아준 것이 전부"라고 몸을 낮췄지만, 이들의 신선한 활동은 11~1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여는 제10회 참교육 실천대회에서 현장교육 실천사례로 소개된다.

'좋은세상'은 2005년 여성폭력 없는'평화마을'을 세우자며 여성주의 활동가 네댓명이 모이며 시작됐다. 원년 멤버인 박신연숙(44) 좋은세상 사무국장은"작은 마을 단위에서부터 평화가 파문처럼 번지는 풀뿌리 운동을 하고자 지역여성들을 발굴해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지역으로 활동반경을 한정해 학부모회, 부녀화, 통반장, 교사 등을 대상으로 지역여성 리더십 교육을 시작했다. 꼬박 4년 만에 열혈 활동가만 20여명, 모임 카페 회원 수는 150여명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2006년부터 2년간 서울지역 학교와 공부방을 찾아 다니며 청소년들에게 실시한 인권교육이 200여회에 달한다.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십대 여성의 가출, 가정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매주 거리로 나섰다. 중고교가 가까운 지하철역 인근에 고정적으로 상담 부스를 설치했다. 질풍노도의 십대들이 속내를 털 놓기 쉽도록 묘안도 동원됐다. 십대들의 유행어를 빌려 얼마든지 '멍 때리며' 놀 수 있는 부스(멍 부스)를 만들었고, 보드게임을 하며 노는 부스(링딩동부스), 손톱 손질을 받을 수 있는 네일아트 부스 등을 설치해 청소년의 관심을 유발했다. 호기심에 달려왔던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장난을 치는 사이 자연스레 폭력의 경험 등 속내를 털어놨고 회원들은 상담하고, 격려하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거리상담은 부모들도 변화시켰다. 2009년 활동을 시작한 이경희(42)씨는 각각 초중고교생인 세 딸과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씨는 "거리에서 십대소녀들의 고민을 매주 접한 뒤 눈빛만 봐도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거리 상담에 나섰던 정수임(42)씨는 올해 교육청 파견 상담 활동에도 지원하며 전문 상담사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에는 거리상담 축제도 열었다. 억눌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끼나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박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속담에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며 "때로는 폐쇄회로 TV의 눈 대신 이웃의 눈이 청소년 대상 범죄를 막아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