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다 원하기 때문에 회담을 추진하는 것 아니겠느냐."
북한이 20일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하고 우리 정부가 이례적으로 즉각 수용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남북한 모두 대화 재개를 통해 얻을 것이 많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19, 20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 미중 양국은 북한을 향해 군사적 긴장완화를 촉구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이후 보여준 냉정한 접근을 높이 평가했다. 한마디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라는 메시지였다. 한 군사전문가는 "빅브라더 두 명이 동생들을 다독이고 타이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남북한도 뭔가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컸다. 특히 북한의 경우 지난해 잇단 대남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진데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압박하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게 됐다. 결국 대화를 먼저 제의함으로써 현재의 난국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대외적으로도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했다. '선(先) 남북대화, 후(後) 6자회담'이라는 대원칙을 일찌감치 정했고 최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방한해 "남북대화에서 생산적인 결과가 나와야 6자회담으로 갈 수 있다"며 힘을 실어줬지만 섣불리 대화를 먼저 제의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대화의 전제로 내세운 조건들이 족쇄를 채웠기 때문이다.
전제조건은 천안함ㆍ연평도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추가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 변화 등 3가지를 말하는데 북한은 지난해 3월 천안함 사태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태도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따라서 이날 북한이 천안함ㆍ연평도 문제를 의제로 다루자고 제의한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등 우리가 원하는 어젠다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우리가 회담에 응하는 것"이라며 "미중 정상회담과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우리의 판단에 따라 대화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인민무력부를 통한 북한의 대화 제의가 그 형식에서 공식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은 북한의 진정성 확인을 위해 당국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일관된 입장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6자회담으로 가는 게 큰 흐름인데 한국 정부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회담 의제와 방식이다. 천안함, 연평도 문제는 군 당국간 협의사항이지만 비핵화 문제의 경우 북한 외무성이 담당한다. 이날 정부가 비핵화 문제를 협의할 고위급 회담을 북한에 추가로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의제를 하나씩 쪼개면서 시간을 버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말리지 않고 관련 내용을 한번에 다루자는 역제안인 셈이다.
특히 지난해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7차례 실무회담을 거치면서도 천안함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시간벌기용 회담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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