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에 위치한 한국화장품제조 공장은 매일 오전8시가 되면 어김없이 타령 장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이 공장 어원석(40ㆍ사진) 보건관리과장이 "덩더쿵" 추임새를 넣으면 50여명의 전 직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탈춤을 춘다. 직원들은 흐르는 땀을 훔치며 건드렁, 여닫이, 배치기, 어깨치기, 멍석말이 같은 송파산대놀이의 동작을 능숙하게 선보인다.
마치 탈춤 동호회의 연습장면 같은 이 공장의 '아침 춤판'은 실은 어 과장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2005년부터 도입한 비법이다. 화장품공장 노동자들이 가장 걸리기 쉬운 질환은 요통. 컨베이어벨트 앞에 하루 8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제품 뚜껑을 여닫고, 하루 수천 개의 화장품 박스를 포장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 과장의 탈춤 요법 덕분에 이 공장에는 어 과장 부임이래 요통으로 인한 산재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 과장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8일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산재예방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어 과장이 탈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경보건학 공부를 했던 대학시절 선배의 권유로 탈춤 동아리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그러다 한국화장품 부천공장 보건관리자로 입사한 1999년 그는 한국산업안전보전공단 직무연수 교육을 받으면서 마침 요통예방을 위한 탈춤보급을 준비하던 무형문화재 49호 송파산대놀이 전수자인 함완식 선생을 만났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탈춤 전도사로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여성들이 많은 작업장의 특성 때문에 "춤을 추면 땀이나 화장이 지워진다"고 항의하는 직원도 있었고 "체조가 무슨 통증 예방에 효과가 있겠느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둘씩 탈춤의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업무시작 전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탈춤으로 몸을 푸는 직원들을 공장 곳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어 과장은 현재 노동조합, 공장, 노동관련단체에서 1년에 50차례 이상 강연을 다닐 정도로 유명인사이다.올 5월에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미국산업위생학회에서 탈춤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어 과장은 "꼭 생산직 노동자뿐 아니라 컴퓨터 사용 등 평소 팔을 안쪽으로 옹그리는 작업이 많은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탈춤이 효과적"이라며 "탈춤 동작에는 팔을 바깥쪽으로 쭉 펴는 동작이 많아 근육이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만 배우면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안전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어 과장은 "탈춤을 통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직업병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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