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의 신석기전시실에 전시된 유물들 가운데 독립장에 전시되어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이 있다. 가리비 조개 껍질로 만든 조가비 탈, 즉 '패면'이 바로 그 유물이다. 이 유물은 신석기시대 유적인 동삼동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하나지만 조개 껍질 뒷면을 뚫어 두 눈과 입을 나타낸 모습이 마치 가면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름을 조개로 만든 탈이란 뜻에서 '패면'이라고 했던 것이다.
동삼동은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데 구 전체가 섬으로 되어있다. 패총이란 잘 알려져 있듯이 사람이 먹고 버린 조개 껍질들이 쌓여 만들어진, 말하자면 쓰레기더미를 말한다. 그런데 패총에는 먹고 버린 조개의 종류는 물론 사용하다 버린 토기나 뼈로 만든 물건, 동물들의 뼈, 생선 뼈 등 당시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많은 유물이 함께 묻혀 있어 이들 유물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생활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고고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유적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동삼동 패총은 과거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광복 후 미국인 모아와 샘플 부부에 의해 조사됨으로써 그 중요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위스콘신대학 장학금을 받은 모아 부부는 우리나라 선사시대 연구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일본을 경유, 1962년 우리나라에 왔다. 당시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김원룡 교수의 도움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논문에 필요한 연구 활동을 하게 되었다. 모아는 제일 먼저 부산의 동삼동패총을 주목하고 1963~1964년 논문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구덩이, 즉 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모아는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학생들과 패총 시굴조사를 함께 했다. 그런데 이 시굴조사가 약간의 말썽이 되어 결국 모아는 조사된 자료만 챙겨 연세대학교 박물관 손보기 교수를 찾아갔다. 1963년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고고인류학과가 개설되고 겨우 3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까지 고고인류학과에서 패총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식 패총 발굴 방법도 실습할 겸 김원룡 교수는 학과 재학생을 참여시켰던 것이다. 동삼동 발굴 자료를 챙겨 연세대로 간 후 모아 부부는 목적을 달성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1969년부터 국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공동으로 동삼동패총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패면은 제3차 조사인 1971년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동삼동패총이 중요한 것은 모아 부부가 발굴 자료를 미국으로 가져가 최초로 과학적인 연대측정을 한 데 있다. 즉 탄소동위원소측정법에 의해 이 패총이 기원전 4,000년경에 형성되었음을 밝혔던 것이다.
이 패면은 앞서 말한 바 같이 가리비조개 껍질을 가지고 사람 얼굴 모습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유물의 용도를 가지고 조개탈이라는 주장, 원시종교에 따른 신앙의 부산물이라는 견해, 주술사가 패용한 물건이라는 주장 등 다양했다. 패면의 크기는 10.7cm에 지나지 않아 손바닥 크기에도 미치지 못해 사람의 얼굴에 가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접 가면으로 이용했는지의 여부는 수수께끼로 남겨두고 조개 껍질을 가지고 가면처럼 만든 물건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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