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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소와 함께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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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소와 함께 살아가는 법

입력
2011.01.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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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에는 세계인구가 90억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그러니까 40년 사이에 현재 인구의 1.5배 가까이가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65억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90억이라니, 참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숫자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또 은근히 걱정스러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뭘 먹고 사나 하는 것이다. 그저 먹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잘 먹기를 바라며 사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 기아 문제는 오늘날에도 낯선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먹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바로 휴전선 너머 북쪽에도 그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들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참회

인구 문제를 들먹일 때마다 익숙하게 떠오르는 이름인 멜서스는 언젠가 인구가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인류의 생산성의 한계를 들었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일 만큼 생산성이 늘지 못하는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 사람의 숫자가 불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생각하면 쉽겠다. 한 집안에 다섯 명의 식구가 사는데 세 명이 먹을 만큼의 양식 밖에 없다면, 처음에는 나눠먹겠으나 나중에는 세 명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쉬운 예지만 참혹한 예이기도 하다.

잘 먹는 것은 고사하고 그저 먹기 위해서 만이라도 먹는 문제는 중요하고, 환경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언제까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보장해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재가 일어나면 채소값과 쌀값이 폭등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면 고기값이 폭등한다. 올랐던 채소값은 조정되거나 다시 떨어지기도 하고, 질병은 통제되거나 자연히 소멸하기도 한다. 조절하고 통제하는 데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대개는 자연이 주는 징벌과 자연이 주는 용서, 혹은 또 한번의 기회처럼 여겨진다. 자연에 대해 보다 겸손하고, 보다 경외하라는 뜻이겠다.

구제역이 발생해 온 나라가 난리다. TV 뉴스 화면에서는 살처분되는 소들이 보인다. 살처분이라니, 말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죽여서 묻지 않으면 더 많은 소가 구제역에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계에서는 그렇게 죽어가는 소들을 위해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다.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는 없겠으나, 탐욕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기는 하겠다.

살처분되는 소들을 볼 때마다 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 소들을 키웠던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팔고 먹자고만 키웠겠는가.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돌아가니 안 먹을 수는 없겠으나, 정도 쌓이고 마음도 가고 그랬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감사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소를 묻어 없애고 밤마다 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는 한 축산업자의 인터뷰는 그저 고깃덩어리를 사서 먹기만 하는, 고기값 오르고 내리는 것에만 신경이 팔린 나 같은 보통 주부의 마음도 울린다.

환경이 주는 재앙의 경고

정부가 다른 어떤 정치적인 문제보다 먼저 구제역을 잡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거창한 정치 논리를 따지기 전에, 복잡한 시장경제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숨 쉬고 사는 환경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들이 울부짖는 꿈이 어디 그 소를 길렀던 주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살과 뼈는 물론이거니와 똥과 오줌도 내주고, 가죽과 털까지 내주는 것이 소다. 다 주었으니 이제 무엇을 더 주겠는가.

마지막에 남은 것이 경고이겠다. 질병에 대한 경고를 넘어, 세계와 인류 생존의 경고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환경이 주는 재앙의 경고 앞에서 거창한 것은 없다. 그것이 아직 조금이라도 덜 거창할 때에 새기고, 또 다시 새겨야만 할 일이다. 저녁 반찬거리를 위해 수퍼마켓에 가기 전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주부인 내 마음이 또 참혹하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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