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란 국영 TV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와 정성스럽게 빗질한 머리 등 한 눈에 보기에도 친근한 인상을 풍겼지만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말리라는 이 남자는 지난해 1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출근길 도중 폭탄공격을 받고 사망한 핵 물리학자 마수드 알리 모하마드에 대한 테러를 자신이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사건이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3년 전부터 정교하게 기획된 암살이었다는 것. 자말리는 이스라엘과 터키 이스탄불, 태국을 오가며 사격, 위장술, 폭탄 모의실험 등 습격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받았다. 암살 직전에는 유사 상황을 가정한 예행 연습도 세 차례나 실시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17일 이란의 핵보유를 저지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은밀한 작전'을 집중 조명했다. 방식은 다양하다. 이란 핵개발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실험실에서는 원인 불명의 폭발이 일어났으며 핵 프로그램에 연계된 비행기가 추락했다. 최근에는 우라늄농축시설의 원심 분리기 제어 시스템이 원인 모를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해 대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에 목을 메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만큼이나 이란의 핵보유는 이스라엘의 존립을 좌지우지할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총성없는 전쟁'을 진두지휘한 총책은 8년간 모사드를 이끌고 지난 6일 퇴임한 메이어 다간 전 국장. 다간 전 국장은 자리를 떠나기 전 "중동 전체를 화약고로 몰아 넣는 이란과의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언뜻 보면 평화를 강조한 듯 보이지만, 비밀 작전을 통해 이란의 핵보유를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이스라엘의 자신감은 수십년간 축적된 표적 살해 경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가령 이스라엘은 지난해 11월 이란 핵과학자 마지드 샤리아리 암살 때 자석 폭탄을 동원했고, 1978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지도자 와디 하다드를 살해하기 위해 치약에 독을 주입하는 등 매번 기상천외한 방식을 개발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있을까? 슈피겔은 잔악한 비밀 작전이 전략적 성공은 거뒀을 지 몰라도 더 큰 충돌을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은 1992년 이슬람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사무총장 압바스 알 무사위를 헬리콥터 공격으로 살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확히 한 달 뒤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폭발이 일어나 29명이 숨지는 참극으로 귀결됐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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