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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포퓰리즘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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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포퓰리즘의 정치경제학

입력
2011.01.1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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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의 '3+1(무상 급식ㆍ의료ㆍ보육과 반값 등록금) 정책'공약이 촉발한 포퓰리즘 논란은 우리 사회가 먼저 풀거나 답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에 기반한 민주당의 무상 공약이 과연 포퓰리즘의 산물이냐는 것이고 둘째는 포퓰리즘은 무조건 나쁜 것이냐는 의문이다.

정치권과 학계가 양쪽으로 확연히 갈려 서로 상대를 '위선적' 또는 '차별적'이라고 격렬하게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또 다른 논쟁만 낳는 물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를 좇는 사회라면 지금 단계에서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야당 '3+1 공약'이 던진 두 질문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더욱 심화돼 공동체의 존속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점이나, 다음 대선의 최대 쟁점이 복지로 압축되는 정치경제적 맥락을 보면 더욱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

우선 19세기 말 미국 인민당에 기인한 어원이나 20세기 중반 나치 독일과 남미 등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면 포퓰리즘은 정권 획득과 유지를 위해 인기ㆍ선동정책으로 대중을 동원하거나 영합하는 모든 정치행태로 정의된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어느 한 진영에 국한된 성향이 아니며, 대의민주주의에 입각한 현대정치는 많든 적든 포퓰리즘을 피해갈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경우도 여야가 서로 복지 포퓰리즘,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공박하듯이 사안과 입장에 따라 주객은 언제든 뒤바뀌어왔다.

이렇게 보면 포퓰리즘 자체는 선악의 개념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학계에서"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병리현상이 아니라 현대정치 내부에 상존하는 구성요소"라는 주장과 함께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이런 흐름을 잘 반영한다. 여당이 선심과 무책임이라는 뜻으로 포퓰리즘 공세를 남발하다가 슬그머니 망국적ㆍ기만적 등의 부정적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포퓰리즘의 단점만 몰아붙일 경우 복지 어젠다와 프레임의 선점이 승패를 좌우하는 선거에서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 같다.

반면 민주당의 무상 시리즈는 분명 포퓰리즘 색채가 짙다. 어떤 철학으로 포장하고 논리로 덧씌우든, 실현 가능성보다 대중의 감성과 반감에 호소하는 흔적이 짙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지지출의 역동성, 특히 의료수요의 가격탄력성까지 감안할 때 과연 '3+1 정책'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산한 연 16조~17조원의 추가비용 규모와 조달방식을 놓고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면 무상급식 공약을 내건 지방선거의 승리에 도취돼 너무 나간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라면 규모의 문제일 뿐, 한나라당도 포퓰리즘 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국민 70%를 대상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70%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일종인'생애주기별 맞춤형 사회서비스'아이디어는 한나라당에서 먼저 나왔다. 복지수요의 양적 확대 요구와 국가의 재정능력을 함께 고려한 현실적 대안이란다. 4대강 사업은 여전히 불가침이다. 이런 논리라면 집권 후 국가 자원배분의 틀을 바꾸고 발상을 전환해 복지수준을 90~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민주당의 주장도 충분히 말이 된다.

이런 논란이 무익했던 것은 아니다. 저출산ㆍ고령화와 양극화라는 미래과제에 대처하려면 우리 사회가 복지의 질적 향상 방안에 보다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확실히 넓어졌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비용의 악순환'관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내수기반을 키우는 '투자의 선순환' 개념으로 복지문제를 보자는 것이다.

복지 확대, 비용 아닌 투자로 봐야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이른바 나쁜 포퓰리즘을 배제하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이다. 다행히 남미모델, 북유럽모델 등 우리가 지혜를 구할 사례와 연구는 많다. 물론 재원이 중요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뒤흔들 수는 없다. 정치권이 복지 포퓰리즘 논쟁에 쏟을 여력이 있으면 공화주의 정치공동체의 주권자인 '인민(populus)'의 구체적 삶을 진지하게 살피기 바란다. 당초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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