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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1> 항공 취재 '아찔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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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1> 항공 취재 '아찔한 추억들'

입력
2011.01.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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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명절이 되거나 계절이 바뀔 때면 방송사가 헬기를 띄워 취재를 하고 리포트를 하지만 1960~1970년 대에는 신문사가 비행기를 소유했었고 여기 타는 건 주로 사진기자의 몫이었다. 항공 취재에 얽힌 에피소드는 참으로 많아 그 중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해방 후 비행기를 처음 가진 신문사는 1960년 대 한국일보였다. HL22 기종의 이 비행기는 대전에 살던 배덕천이라는 예비역 중령이 조립을 한 것으로, 후에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일보의 항공부장이 되었다. 비행기를 처음 탄 조종사는 일본 항공대 출신의 박성도로 경비행기에는 도사였다. 비행기를 조립한 배 중령은 본인이 조립해 놓고도 탈 자신은 없었는지 항상 박조종사에게 조정을 양보를 하곤 했다. 사실 말이 비행기이지 무전기도 없을뿐더러 몸통도 알루미늄이 아닌 천막 천과 페인트로 만든 행글라이더 수준의 비행기였다.

어느 여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취재하기 위해 박성도 조종사와 부산으로 향했다. 경부선 철길을 방향으로 잡고 부산으로 내려가 수영비행장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서울로 귀향할 때가 문제였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레이더와 무전기도 없어 그저 나침반에만 의존해야 했다. 방향을 정한 후 두 시간 가량 걸리리라 생각하고 무작정 날았는데 가도가도 구름뿐이었다. "어이 박형,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두 시간이 가까워 오자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 이제 다 와가. 걱정 말라고." 박조종사가 태연한 척 말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다. 한 순간, 구름아래로 구멍이 뻥 뚫리며 시야가 들어왔고 박조종사는 기수를 아래로 돌려 하강하며 구멍 아래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자 바다가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천 부근의 해상이었다. 박조종사가 조종간을 조이더니 기수를 왼쪽으로 돌려 인천 앞바다를 타고 방향을 잡아 격납고가 있는 수색 비행장에 착륙했다.

비행장에 나와 있던 정비사를 보고서야 '살았구나!" 생각했다. 박조종사가 장비를 인계하며 "정형이 사진에 도사이듯 나도 비행에는 도사요."하며 의기양양했지만 나는 놀란 가슴을 한참이나 진정시켜야 했다. 그 때 구름 아래로 구멍이 보이지 않았으면 어찌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1968년 3월 18일 부산 전신전화국에 화재가 발생해 교환수 6명이 사망하고 42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4층에서 일어난 불은 5층 교환실과 6층 기계실을 전소시켰고, 옥상과 연결된 7층까지 피해를 입었다. 박성도 조종사를 찾아 비행기를 타고 황급히 부산에 도착했으나 이미 긴박한 상황은 종료되어 쓸만한 사진을 찍을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부산일보를 찾아가 사진을 부탁했는데 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진부 이상현 기자에게 "이기자. 그럼 사진 구경이나 합시다. 어떤 그림이 나왔는지 알고는 가야 될 거 아니오" 하고는 신문을 인쇄하는 공장으로 내려가 그만 사진 욕심에 공장에 있던 동판을 들고서 수영비행장으로 뛰었다. "박형, 빨리 서울로 갑시다." "아니, 벌써 왔어? 지금 비행기에 기름도 없는데." 계기판을 보니 기름이 떨어져 달랑달랑했다.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자동차 기름 한 번 넣어볼까?' 박조종사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시발택시를 타고 근처 주유소를 찾아 고급자동차 휘발유 한 통을 사왔다. 세무 가죽을 깔고서 탱크에 부어 넣고는 눈을 딱 감고 이륙을 했는데 다행히도 별 사고가 없었다. 지금의 여객기나 비행기로는 옥탄가 등의 문제 때문에 어림없는 얘기겠지만, 피스톤 방식이던 당시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한편, 며칠이 지난 후 부산일보에서 동판을 들고 나온 일로 본의 아니게 이상현기자가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면직을 당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나였기에 장기영사장에게 선처를 부탁해 후에 이기자는 한국일보 부산지사에 발령을 받게 됐다.

비행기 기름에 얽힌 얘기를 하자니 여봉길 조종사와 추풍령을 넘던 기억도 떠오른다. 취재를 위해 '세스나기'로 추풍령을 넘어 대구 상공을 날던 때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 시야에 안개 같은 것이 뿌옇게 떠올랐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여봉길 조종사에게 물었다. "여부장, 혹시 기름 새는 거 아니오?" "기름이 새다니?" "좀 이상해. 비행기 오른쪽 날개에서 뿌옇게 안개처럼 끼는 게 있어." "예끼, 여보. 비행기 같이 오래 탔다고 못하는 말이 없어. 여기 기름 게이지를 보라고. 아무 이상 없잖아." 여조종사는 내게 계기판을 보여주었는데 정상이었다.

조금 더 가는데 뒤에 앉아 있던 정비사가 의문을 제기해 일단 착륙해서 점검해보기로 했다. 대구 앞산 비행장에 내려 연료 통을 열어보니 기름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정비사가 비행기를 수리하면서 공기 구멍을 확실히 막지 않아 바람이 기름탱크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탱크 안에 있던 기름이 얇은 구멍을 통해 공중에서 새어 나갔지만 기름 대신에 공기가 들어가니 부표가 떠 있어서 연료 게이지는 정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걸 모르고 계속 비행했더라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렇듯 많은 조종사들과 얘깃거리를 남기며 비행했던 시간을 따져보니 족히 1,000 시간은 훨씬 넘을 듯 하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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