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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46배의 능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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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146배의 능력 차이

입력
2011.01.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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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서로 연결되는 내용이 있어 전해드리려 한다.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의 도입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알다시피 기세 등등했던 월스트리트가 2008년 이래의 금융위기로 거덜이 났다. 그 해 10월, 의회는 7,000억 달러의 구제 자금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그 동네가 망하면 미국 전체가 망할 테니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돈 중 일부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고위 임원들의 상여금으로 지급됐다. 미국은 분노했지만 임원들은 태연했다. 금융위기는 일종의 쓰나미 같은 불가항력이었고 자신들은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샌델 교수는 이렇게 반문한다. "거대하고 조직적인 경제의 힘이 2008~9년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주범이라면, 그보다 앞서 발생한 눈부신 이익도 마찬가지 아닐까?" 실패가 불가항력이었다면 성공도 얼마간 그렇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2007년에, 그러니까 '잘 나가던' 때에,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노동자들보다 평균 344배나 많은 보수를 받았다. 성공에도 외적 요인이 다수 개입하는 게 사실이라면, 왜 성공을 함께 일군 임원들과 노동자들의 연봉은 300배가 넘게 차이가 나야 하는가. 성공은 능력 때문이고 실패는 환경 때문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시장의 원리이니 놔둬야 하는가? 아니라고,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에서 말한다. 이 차이는 시장 논리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조종의 결과일 수 있다. "경영자 계층이 시장을 조종하고 또 자신의 결정이 부른 부정적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도록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수 체계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있고 또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이 환상을 방임하는 동안 공동체 전체의 경제는 큰 손실을 입고 만다. 여기에다 샌델의 말을 덧붙이자.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기는 한가? 다들 그 불공정한 피라미드의 윗자리에 올라가기만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김두식 교수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에 따르면, 국립대 교수들이 모여 앉아서 "철도공사 직원들이 우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니 기가 막히지 않냐?"라며 한탄했다 한다.

저자의 반문이다. "철도공사 직원이 국립대 교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된 일일까?" 그리고 덧붙인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라면, 우리나라 최대기업 등기이사들의 평균 연봉이 78억이라는 사실에는 왜 분개하지 않는가. 철도공사 직원들의 월급에 분노하는 이들이 자신보다 100배나 많은 연봉을 받는 이들에 대해선 분노하지 않는다. 다시, 김교수의 말이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차이가 100배에 이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감사원장 후보를 사퇴한 정동기 씨의 법무법인 월급은 1억1,000만 원이었다. 지금 해고되어 투쟁중인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은 75만원이었다. 그 월급조차 줄이려고 해고했는가. 서글프고 답답하고 죄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차이가 146배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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