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파워'가 결국 튀니지의 23년 장기 독재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 여파는 가라앉지 않고 혼란과 충돌은 계속됐다.
튀니지 국영방송은 14일(현지시간)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튀니지를 떠났다고 밝혔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이튿날 사우디에 도착해 사실상 망명길에 올랐다.
튀니지 헌법위원회는 푸아드 메바자(77)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직에 임명했고, 여야 주요 정당들은 통합정부 구성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15일 이후에도 전 대통령 경호실장이 체포되고 야당 당사 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정정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 청년 노점상의 분신
민중 봉기의 불을 댕긴 것은 한 노점상 청년의 죽음이었다. 지난해 12월 튀지니 중부의 소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무허가로 과일을 팔던 모하메드 부아지지(25)는 경찰 단속에 걸려 청과물을 모두 빼앗겼다. 졸지에 생계 밑천을 잃은 그는 시청을 찾아 수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당국이 관심조차 보이지 않자 청사 앞 도로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부아지지의 소식이 퍼지자 도시는 연일 시위대로 뒤덮였고 4일 그가 끝내 사망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때맞춰 터진 식료품 값 인상과 최고조에 달한 실업난은 시민들의 저항 열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시위는 이후 '독재 타도'를 전면에 내걸게 됐고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23년 독재자 축출
벤 알리 정부는 철저한 탄압을 선택했다. 소요 사태를 "폭도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무장 경찰과 보안대 병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시위가 잦아들기는커녕 수도 튀니스까지 번지면서 정권을 위협했다.
벤 알리 대통령은 그제서야 차기 대선 불출마, 내각 해산 및 조기 총선 실시 등 유화책을 내놓으며 민심 수습에 나섰으나 저항의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14일 하야 후 망명을 선택했다.
계속되는 혼란
독재자는 떠났지만 튀니지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북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됐던 튀니지는 현재 치안 공백 상태"라고 전했다.
튀니스에서는 중앙역 청사가 불에 타고 시내 대형 할인매장이 약탈 당하는 등 혼란이 계속됐다. 동부의 한 교도소에서는 방화로 재소자 50여명이 숨졌고,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14일 시위 취재 도중 최루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던 프랑스계 독일 사진기자가 16일 숨을 거두기도 했다.
튀지니 경찰은 15일 이후 앰뷸런스 등을 이용해 주택 등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혐의로 50여명을 체포했다고 AP는 전했다. 또 알리 세리아티 전 대통령 경호실장 등은 국가안보 위협 음모 혐의로 체포됐다.
이집트와 사우디 등 권위주의 정권이 장기 집권해 온 아랍권 국가들은 튀니지발 민주화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눈치다. 특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는 "왜 당신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느냐"며 알리 전 대통령을 옹호하기도 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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