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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의 타이거 마스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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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의 타이거 마스크 열풍

입력
2011.01.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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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세루'는 배낭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 란셀(ransel)이 변해서 일본에 정착한 말이다. 일본 초등학생들이 하나같이 입학 때 사서 졸업 때까지 메고 다니는 책가방을 말한다. 6년 동안 써야 하니 가죽으로 튼튼하게 만들고 그래서 가격도 평균 수십만 원 정도로 비싸다. 취학 연령의 고아원 아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초등학교 입학 보조금이 나오지만, 쓸만한 란도세루 하나 사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대신 란도세루 구입 부담을 덜면 다른 학용품 등을 준비할 여유가 생긴다.

기부 릴레이와 공동복지 갈망

연초부터 일본에서 '타이거 마스크' 열풍이 거세다. 40년 전 프로레슬링 만화 주인공 타이거 마스크의 본명 다테 나오토(伊達直人)로 자신을 감춘 기부운동이다. 시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군마(群馬)현 마에바시(前橋)시의 한 고아원에다테 나오토라고 밝힌 익명의 기부자가 란도세루 10개를 보낸 것이다. 이 미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비슷한 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

NHK 집계로는 15일까지 1,056건에 기증된 란도세루가 752개나 된다. 현금과 상품권 기부가 4억원을 넘었고 쌀이나 의류, 전기제품 등 생활필수품 기증도 적지 않다. 기부자 이름도 다테 나오토처럼 고아원 출신인 인기 권투만화 주인공 야부키죠(矢吹丈)를 비롯해 등 만화와 설화, 역사 속의 영웅이 즐비하다.

한파 속의 온정 릴레이에 일본 열도가 흐뭇해하는 건 당연하다. 전국 600곳 가까운 시설에 4월 새 학기를 앞두고 란도세루 기증운동을 연례행사로 정착시키자거나, 밸런타인 데이처럼 '타이거마스크 데이'를 정하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타이거 마스크 열풍은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 이 경제대국의 그늘에 저소득 사회적 약자가 상당수 있고, 한편으로 이들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서로 조금씩 나눠 가져 함께 잘살자는 '공동 복지'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고복지ㆍ 고부담' 체제인 서유럽 국가들이 모범적으로 보여주듯 사회 전체의 기초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부담 증가가 필수다.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하면서 사회 양극화가 진행되는 나라는 특히 복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회 전체가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여론은 타이거 마스크 기부에는 감동하면서도 복지 확충을 위한 증세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등에는 공교롭게도 타이거 마스크와 이름이 같은 간 나오토(菅直人)총리를 비아냥대는 글이 적지 않다.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한 세제 개혁을 '증여는 다테 나오토, 증세는 간 나오토'라고 꼬집는다. 간 총리가 사회 복지비용에 쏟아 붓느라 매년 엄청난 적자가 나는 나라 살림을 바로 잡기 위해 소비세를 올릴 결심을 굳히고도 실행을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 합의로 정책ㆍ재원 마련을

한국에서도 무상 급식과 무상 의료, 무상 보육 등 민주당의 사회복지 확대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반대론은 일본 민주당 정권에 쏟아지는 것과 똑같은 "재원 대책도 없는 선심 공약"이 주류다. 한국 역시 일본 못지 않게 사회복지 확충이 필요한 사회라는 데 동의한다면, 재원 운운은 본말이 전도된 논의다. 재원은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 설계에 따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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