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피고인으로 법정엔 선 A씨는 첫 공판에서 판사로부터 "사람은 인상이 좋아야지, 그렇게 나빠서야 더 볼 것도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기록을 제대로 보기나 한 건지, 도대체 인상 얘기는 왜 꺼내는 걸까…' 당황한 A씨와 담당 변호사는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장면2. 민사소송 당사자인 B씨는 재판부의 조정 권유를 거부하다 불쾌한 경험을 했다. "이미 판결문이 쓰여져 있다. 패소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압박하던 판사는 급기야 변호사를 면전에 두고 "대리인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도 나를 변호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깎아내릴 것까지 있나' 하는 생각에 옆을 쳐다보자, 변호사의 얼굴은 이미 붉어진 뒤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6일 '2010년 법관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년간 소송을 맡았던 사건의 담당 판사를 서울변호사회 소속 회원 7,354명 중 517명이 평가하도록 한 뒤 그 결과를 취합한 것이다. 전국 법관 2,550명 중 903명이 대상이 됐으며, 평가 평균 점수는 77.73점(100점 만점)이었다.
변호사들이 지적한 대표적인 문제 사례로는 법관의 막말과 고압적 태도 등이 꼽혔다. 한 변호사는 평가서에 "한 판사는 '수업하는데 왜 떠드느냐, 학교 다닐 때도 수업시간에 많이 떠들지 않았느냐. 강의할 테니 잘 들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법관이 부당하게 조정을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사 표시를 노골적으로 하거나, 재판 도중 감정적 발언이나 재판에 대한 예단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도 쏟아졌다.
서울변호사회는 평균 50점 미만을 받은 하위 평가 법관 8명에 대해서는 자성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로 했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3년 연속 하위 평가 법관으로 꼽힌 서울 소재 법원 J판사와 2년 연속 하위 평가 법관으로 지적된 또 다른 J판사, K판사의 경우 개선되지 않는다면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에서 상위 평가 법관 15명은 실명이 공개됐다. 이들의 평균 점수는 96.87점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황적화 부장판사는 3년 연속, 같은 법원 문영화 임채웅 홍승면 부장판사는 2년 연속 상위 평가 법관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변호사회의 법관 평가는 2008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3회째이지만,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발표에 대해서도 한 변호사는 "변호사의 소송 준비가 미흡해 판사가 쓴소리를 하는 경우에도 '막말'로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며 "특히 승소한 변호사보다는 패소한 변호사가 주로 평가에 참여하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관 평가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되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법조 직역 외부의 시민단체에 평가를 맡기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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