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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현대사 아리랑' 펴낸 소설가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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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현대사 아리랑' 펴낸 소설가 김성동

입력
2011.01.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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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글의 일치는 이상이지만, 그 이상을 부조리한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할 때는 비극으로 흐르기 일쑤다. 예컨대 불교적 이상이 현실에서는 죽음이고, 기독교적 이상이 십자가 처형이듯이.

불교 구도소설의 한 정점에 올랐던 소설 <만다라> (1979)의 작가 김성동(64)씨는 그의 글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어떤 불길함과 불운이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홀로 8~9년째 머물고 있는 경기 양평군 청운면 우벚고개 자락 암자의 이름은 비사난야(非寺蘭若), '절 아닌 절'이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더라도 일주문까지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깔린 요새 절에 비하면, 비포장도로에다 가파른 비탈길을 한참을 더 올라야 하니 따지고 보면 더 지독한 심산 사찰이다.

지난 13일 눈 덮인 그 길을 힘겹게 올라 만난 그의 모습도 딱 그 역설적 경계에 있었다. 아랫도리는 승복, 윗도리는 셔츠의 '중 아닌 중'의 행색인데 칼날 같은 눈빛과 바짝 마른 몸매는 수행 수좌의 독한 결기를 내뿜었다. 말하자면, 그는 <만다라> 속 파계승, 지산과 다름없었다. "무슨 염치로 살이 찐단 말인가. 중은 살이 쪄서는 안 돼"라고 외치는 지산처럼. 인터뷰 동안 "세상이 뒤틀렸다"며 그가 쏟아낸 격정과 울분, 독설과 냉소 역시도. 불길했다면 그의 자아의 두 측면일 <만다라> 속 두 주인공, 지산과 법운 중 그가 지금 지산 쪽으로 확 쏠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토해낸 것은 냉정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뭉개진 풀꽃들의 한 맺힘이었다. 김씨가 최근 펴낸 책이 <현대사 아리랑> (녹색평론 발행)이다. 해방 전후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스러져간 혁명가들, 주로 남로당 계열 사회주의자들 이야기다. 박헌영, 김단야, 이재유, 이관술, 이현상, 정태식 등등. 책은 남은 물론이거니와 북에서마저 숙청당하거나 소비에트에 의해 처단돼 '꽃다발도 무덤도 없이 중음신(中陰身ㆍ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조선반도를 떠도는 이들'을 제대로 자리 모시려는 뜻에서 쓴 일종의 제문이다. 접신한 듯 한 달 만에 원고지 2,500장을 써내려 갔고, 그 탓에 오른손 힘줄까지 늘어졌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며 그간 틈틈이 수집해온 사료를 바탕 삼은 김씨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 인터넷의 도움으로 좀 더 많은 자료를 접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언급하길 꺼리는 지금 풍조에서 책의 가치가 사료의 양에 달린 문제는 아닐 듯싶다.

김씨의 작업은 알려져 있듯 그의 가족사적 비극과 맞닿아 있다. 박헌영의 비선(秘線)이었던 그의 선친은 해방 후 예비검속에 끌려갔다가 6ㆍ25 전쟁이 터지면서 처형됐다. 삼촌은 우익에게 끌려가 숨졌다. 선비였던 증조부는 경술국치 때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진했다. 반공 정부의 눈엔 '붉은 씨앗'이었던 그를 옭아맨 것은 연좌제의 덫이었다. 임시 방편으로 택한 것이 출가였으나, 단편 <목탁조> (1975)가 불교계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승적을 박탈당했다. 불교계와도 불화했으나 그는 입산을 통해 부처라는 큰 바다를 알게 됐다고 한다. 선친의 고통을 내면화하고 있던 상태에서 "중생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대승적 구도심이 결부된 것인데, 그에겐 중생이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희생자들로까지 확장된 셈이었다. <만다라> 속 청년 납자들의 구도 여정엔 이 같은 우리 현실이 묵직하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해방 전후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유토피아 사회의 유효성 혹은 시대 적합성 등을 묻기 이전,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당대 가장 진실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일제와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사람은 누구인가."

한 서린 개인사의 비극을 풀지 못한 그에겐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겠지만, 디지털 상상력이 넘실거리는 문단 현실에서 보자면 어쩌면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역사 인식일지 모른다. 그 탓일까. 그는 월 25만원 정도의 원고료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자칭 '앵벌이' 신세에 문단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됐다. 심지어 문학과지성사는 2008년 그를 추리소설가 김성종과 헷갈려, 어이없는 해제를 담은 책을 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요컨대 그의 구도의 패러다임 속에서 삶과 글을 일치시키자면 그는 여전히 세상과 불화할 수 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엄존하는 현실에서 구천을 떠도는 저 넋들이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 지산과 법운이 그랬듯 그의 견성(見性)도 요원할 터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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