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책이란 게 따로 없습니다. 내 서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내놓을 거는 다 내놓았어요.”
지난 주 전세대책을 발표했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사실 전셋값을 잡을 수 있는 묘방을 찾기란 힘들다. 집값이라면 가수요를 잡기 위해 정 안되면 ‘세금폭탄’이라도 퍼붓겠지만, 100% 실수요로 움직이는 전세는 그렇게 대응하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정 장관 서랍 속에는 정말로 지금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이 없다’는 건 주무장관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2년 동안 저축한 돈을 모두 오른 보증금에 넣어도 모자란다” “더 이상 대출받을 수 있는 길도 막혀 외곽으로 나가거나 월세로 바꾸는 수 밖에 없다”는 게 지금 세입자들의 하소연이다. 집주인의 온정도, 금융기관 대출도,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는 세입자들로선 마지막으로 정부만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주무장관은 “대책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책이 없으면 희망이라도 주는 게 책임있는 당국자의 태도일 텐데, 오히려 가슴에 대못을 박은 셈이다.
더구나 정부마저 대책이 없다 하는데, 누가 치솟는 전셋값이 안정되리라 생각할까. 오를 것이 자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계약기간이 남이 있어도 미리 계약을 해 두는 ‘선(先)전세’현상마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답답한 세입자들은 “대통령이 ‘전세와의 전쟁’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고들 말한다. ‘물가와의 전쟁’에서도 그랬듯, 대통령이 말을 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러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전쟁하듯 대책을 쏟아내는 게 지금 관료사회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강하게 전셋값을 언급했더라도 정 장관이 “전세대책은 없다”고 말했을까. 4대강에 쏟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서민들 전세문제에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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