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깨도 금세 또 얼고…, 염화칼슘도 소용 없네요."
최악의 한파가 몰아친 16일, 충북도내 구제역 방역초소는 얼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방역기에서 소독약과 함께 뿜어져 나온 물이 초소 앞 도로를 빙판으로 만든 탓이다. 방역에 나선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차량이 지나가는 대로 삽과 염화칼슘으로 얼음을 제거하느라 바빴다. 봉사자 연규송(56)씨는 "얼음을 치워도 금방 다시 길이 얼어버려 초주검 상태"라며 "방역이 제대로 되려면 날씨부터 풀려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쪽방촌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서 만난 이선희(73) 할머니는 "춥다, 춥다" 하면서도 골목길을 걸어다녔다. "연탄을 때도 외풍이 심해 한기가 가시지 않는 방보다 차라리 바깥에서 몸을 움직이며 열을 내는 게 더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쪽방촌 입구의 노숙인 무료식당 '토마스의 집'은 종일 만원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7.8도까지 떨어져, 영하 18.6도였던 2001년 1월 15일 이후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부산은 영하 12.8도로 96년 만에, 대구는 영하 13.2도로 30년 만에 최고의 추위가 닥쳤다. 밀양(영하 15.8도) 영덕(영하 15도) 거제(영하 10.4도) 등도 1971년 기온 관측을 시작한 이래 40년 만에 가장 추웠고, 울산(영하 13.5도)도 44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됐다.
전국에서 수도계량기 동파가 잇따랐다. 서울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16일 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신고된 동파 건수는 1,200건이 넘었다. 각 상수도사업본부는 비상근무체제로 전환, 사업소 산하 용역업체 직원들까지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 남부사업소(227건)에 이어 204건으로 두번째로 신고가 많았던 서울 북부사업소의 김기동 주임은 "오전부터 인력을 풀가동해 작업했지만 오후 2시 현재 겨우 절반 정도 처리했을 뿐"이라며 "전화를 받느라 입이 아플 정도이고 아침부터 식사도 못했다"고 말했다. 부산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도 "이틀 간 60여건의 신고가 들어온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강추위로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 주행 중 잠시 정차한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는 사례까지 속출했다. 삼성화재는 이날 오후 3시까지 서울 지역에서 배터리 관련 고장으로 출동한 건수가 3,400여건으로 평상시의 8배에 달했다고 말했다.
혹한에 삭풍까지 동반한 이번 강추위는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이 이례적으로 강하게 발달한데다 북극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확장하는 '북극 진동' 효과가 겹친 때문. 시베리아 지역에 평년보다 많은 눈이 오면서 햇빛을 반사, 이로 인해 공기가 더 차가워지면서 고기압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은 이번 혹한이 19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19일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9도로 강추위가 잠시 주춤하겠지만 조금 덜 추운 정도일 것"이라며 "1월 하순까지는 평년보다 낮은 기온의 날씨가 지속되겠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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