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명동의 한 대형 쇼핑몰 앞에서 한 젊은이가 다짜고짜 드러누웠다. "멀쩡한 사람이 왜 길거리에서 자고 그래, 장사해야 하니까 얼른 일어나, 빨리!" "이 아저씨가 왜 반말이야" 두 사람간의 갑작스런 다툼으로 거리는 소란스러워졌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웬만큼 모인 건가, 그럼 시작해볼까" 두 사람은 언쟁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태블릿PC를 든 사람들도 이들 옆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연주를 시작하자 흥겨운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어디서 연주되는 건지 몰라 두리번거리던 시민들도 이내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었다.
이날 깜짝 공연을 연 사람들은 스마트폰 밴드인 '스마트그루브' 회원들. 밴드이기는 하지만 드럼, 기타, 건반과 같은 악기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드럼은 물론, 기타, 색소폰, 건반 등 모든 악기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이날 '삐삐밴드'의 노래 '안녕하세요'와 만화주제곡인 '피구왕통키' 등 30분 동안 3곡을 연주했다. 댄스팀 '하람꾼'과 합동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 한 포털사이트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스마트폰 연주에 매료된 이들은 밴드결성에 금새 의기투합했다. 그 동안 제품광고를 위한 스마트폰 연주는 종종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밴드를 만든 건 국내 처음이다. 회원 10명의 직업도 은행원, 건설회사 직원, 학생 등 다양하다. 음악 경력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쳐본 통기타가 전부라는 밴드 리더 박상구(34ㆍ인테리어업)씨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스마트폰 연주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보컬과 맞춰보기 위해 노래방 몇 번 가본 것 말고는 커피숍에 모여 연습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도 스마트폰이 악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건설회사에 다닌다는 민정호(34)씨는 "건반 연주의 경우 터치감이 오히려 불리할 때가 있다"며 "음 이탈이 많아 속도 빠른 연주를 따라잡기도 힘들고, 한마디로 유키구라모토의 감성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날 연주에서 유일하게 멜로디카(입으로 불면서 건반을 연주하는 악기)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계획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 악기 연주가 어려운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폰 연주는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구씨는 "스마트폰 연주는 손가락의 '터치'에서 나오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연주한다면 훌륭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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