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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멍해져야…그제서야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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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멍해져야…그제서야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입력
2011.01.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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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천양희 지음/창비 발행ㆍ128쪽ㆍ7,000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되어/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시인의 말' 중).

천양희(69) 시인이 6년 만에 낸 신작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가 속삭이는 얘기가 그렇다. 우리는 멍해져야 한다. 그때서야 사라지고 스쳐 지나간 것들, 그리고 삶의 이면이 제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새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쳐야/하늘에다 발을 옮기는 것일까/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새가 있던 자리' 중)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사라진 것들의 목록' 중) 등 삶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삶의 브레이크로서의 우두커니는 철저한 자기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 살자고 못할 짓 했나/우두커니 서 있다가/겨우 봄이 간다는 걸 알겠습니다/잘못 다 뉘우치니까/세상의 삼독(三毒)이/그야말로 욱신욱신합니다"('어처구니가 산다' 중)

4부 60여편의 시들은 이렇듯 삶에 대한 묵상들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듯 평이하지만 순일한 시어들이 성숙한 울림을 전한다. "문장을 들고/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쓰고 쓰고 또 쓰는 지독한 짓/문장이란 낭비의 극점에서 완성되는가/말은 뿔처럼 단단해지고/불안은 소리처럼 멀리 퍼진다"('그자는 시인이다' 중)

섣부른 기교와 격정을 비운 듯한 시인의 시 쓰기는 자기 삶의 비움과 다를 바 없다. "속 없이 사는 내가 나는 대견하오 속없이 사는 것 마음 비우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소 나는 평생 속없는 자로 간단없이 갈 길 가려 하오"('공어(空魚) 이야기' 중). 문학평론가 이숭원씨는 "황잡한 시대 천 시인의 시는 진실의 체현을 독특한 형식과 어법으로 선사한다"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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