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물가대책을 논의한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자 관련 부처와 정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가 4개 정유사와 2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에 대해 불공정거래 여부를 가리는 현장조사에 나섰다. 정유사들도 이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즉시 "소나기는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석유 제품가격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인하폭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일 때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80~90달러인데도 1,800~1,900원 하는 것은 정유사나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상식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말이 맞는 듯싶지만,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석유 제품의 가격구조를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2008년에는 유류세를 ℓ당 82원 내렸지만 지금은 그대로 받고 있고, 원유 수입관세도 1%에서 3%로 올랐다. 세금에 따른 가격 인상분만 ℓ당 100원을 넘는다. 여기에 인건비 상승과 환율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 최근 휘발유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가계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정유사들이 일정 부분 이윤을 양보할 필요는 있겠지만, 비싼 휘발유 값의 주원인은 어디까지나 세금과 환율이라고 봐야 한다.
연초부터 물가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과 초저금리 등 MB 정부의 성장 일변도 정책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펴면서 수입 인플레를 유발한 영향이 크다. 당연히 정부는 환율과 금리를 정상화하고 대기업의 독과점을 해소하는 등 근원적인 물가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까지 물가 단속에 동원하는 등 1970년대 관치경제 시절의 물가대책을 답습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통령이 물가를 잡겠다고 의욕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특정 품목의 가격을 거론하며 업계를 직접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행정력 동원은 더 큰 후유증만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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