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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먹거리에 대한 겸손

입력
2011.01.1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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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매몰 처리된 소가 12만두 가깝고, 돼지는 130만 마리나 된다. 염소와 사슴 등을 포함하면 모두 150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 살처분과 매몰, 예방접종, 방역 활동 등의 직접 경비와 매몰 보상금 등으로 이미 1조1,000억원 이상이 들어갔지만, 앞으로 농가의 지원 신청에 따른 추가 재정지출은 훨씬 커지게 마련이다.

2007년 380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대만의 경제손실이 69억 달러에 이른 데 비추면 돼지만으로도 벌써 2조5,000억원 이상, 값이 돼지의 20배쯤 하는 소의 손실액을 합치면 7조원 이상의 손실이 추정된다. 인적 이동 차단과 행사 취소에 따른 관광수입 감소 등 2차 피해를 합치면 손실은 더욱 커진다.

경제손실만이 아니다. 양성 판정을 받은 농가나 농장은 물론이고, 좁게는 반경 500㎙, 넓게는 반경 3㎞ 안의 소와 돼지 모두 예방 차원에서 집단 죽임을 당하거나 산채로 땅에 묻힌다. 시간을 다투어 매몰한 결과 제기되는 지하수 오염 등의 우려에 덧붙여 매몰 현장의 참상이 작업 인력과 주민, 국민에게 던진 충격과 고통도 엄청나 가히 국민적 재앙이다.

살처분만이 대응책인가

결과가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살처분 자체에 대한 의문이 피어 오른다. 정말 살처분이 어떤 단계에서나 유일한 대책일까. '바이러스 증폭기'라는 돼지는 몰라도 소까지 꼭 그래야 할까. 매몰이냐 소각이냐 등의 논란은 이런 의문이 풀린 이후의 일이다.

살처분은 기본적으로 구제역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O형 바이러스를 비롯해 크게 7종인 구제역 바이러스는 동물 바이러스 가운데 크기는 가장 작은 반면 생명력과 전염력은 최강급으로 꼽힌다. 바람을 타고 지상에서는 50㎞, 해상에서는 250㎞까지 날아갈 수 있고, 온도와 습도만 맞으면 1년까지도 살고, 10 개체만으로도 소를 병들게 한다. 다 자란 소의 폐사율은 5% 정도로 낮지만, 송아지는 심근염 등 2차 질병을 포함해 50% 가깝다. 병을 이기고 살아 남더라도 젖소는 젖이 줄어드는 등 소의 전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어차피 온전한 상품가치가 없을 소의 살처분은 지극히 당연하고, 인근의 멀쩡한 소도 바이러스가 퍼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니 함께 죽여야 전체적으로 경제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일정한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우선은 방치해 구제역이 전면적으로 퍼질 경우 구제역으로 폐사할 소의 가치와 살아남을 소의 상품가치 감소액 합계가 죽임을 당해 묻힐 소의 가치보다 커야 한다. 그런데 비교 대상인 두 값은 감염률과 발병률, 폐사율, 상품가치 하락률 등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는 몰라도 어느 정도 확산된 단계에서는 살처분에 따른 경제 손실이 방치했을 경우의 결과적 손실을 넘어선다. 사육 환경 개선이나 운동량 증가, 사료 다양화 등을 통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면 그 균형점을 더욱 낮출 수 있다.

살아남은 소의 체중 저하에 따른 장기적 상품가치 감소는 도살 시기를 앞당기면 줄일 수 있지만 소비자의 수요 기피의 결과인 단기적 상품가치 하락은 소비자의 식품안전 의식의 변화로만 최소화할 수 있다.

구제역은 광우병과 달라

구제역은 광우병과 다르다. 가열해서 먹으면 100% 안전한 것은 물론이고, 날로 먹어도 인체 감염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현재의 참상을 견디기보다 차라리 정서적 거부감을 몰아내는 용기를 발휘하는 게 낫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먹거리에 대한 겸손을 잃었다. 감자나 고구마, 과일이 상하면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고, 쥐약 먹고 가축이 죽으면 내장만 빼내 버리고 먹고, 소가 병들어 죽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싸게 나눠먹던 때가 엊그제 같다. 먹거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가짐만 있으면 식품가치의 손상을 전체 식품의 폐기로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인식의 전환으로 구제역 지옥도를 지우고 싶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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