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우리 어린이 110여명이 여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억류됐다는 소식에 개탄한다. 귀한 자식 하나라도 더 가르치겠다고 빠듯한 살림에 목돈 들여 연수 보낸 학부모들의 낙담이 얼마나 클 것이며, 겨울방학을 망친 어린이들의 실망은 또 어떨까. 그나마 행정적으로 여권만 압류되고 수업을 못할 뿐, 어린이들은 숙소에서 큰 불편 없이 묵고 있다니 위안을 삼을 뿐이다.
사고는 연수를 주선한 유학업체가 필리핀 이민법 상 우리 어린이들이 현지에서 학업을 할 경우 반드시 받아야 하는 외국인학업허가증(SSPㆍSpecial Study Permit)을 갖추지 않아 벌어졌다. 출입국 과정에서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1인당 15만원 선인 SSP 신청수수료를 안 쓰려 하다가 화를 불렀다니 한심한 일이다. "관광비자나 무비자로 학생들을 데려와 연수를 시키다 문제가 생기는 일이 수년 전부터 종종 있었다"는 업계 관계자의 얘기대로라면 이런 일은 이미 관행이 됐을 개연성도 크다.
폭증세를 타던 어린이 조기 해외유학이나 단기 어학연수 수요는 2008년을 전후해 크게 줄고 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무관치 않겠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없다는 경험이 널리 공유되면서 자연스레 수요가 준 측면도 크다. 그러자 일부 소형 유학업체를 중심으로 무리한 '덤핑상품'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묻지마 필리핀 어학연수'니 '무료항공권 연수비용 대폭 절감'이니 하는 인터넷 광고문구들이 현실을 말해준다.
덤핑경쟁이 벌어지면 연수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사고를 낸 업체도 그랬지만 현지의 콘도나 리조트를 임대해 브로커를 통해 학생을 모집하고, 강사도 주먹구구식으로 채용하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학원들이 각급 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것과 달리, 유학업체들은 관할 감독기관조차 없어 악순환이 방치되고 있다.
단기 연수로 외국어실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기대도 안타깝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관리감독 체제가 시급히 마련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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