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몸과 마음 같다. 인생이란 몸이 시키는 일을 따라 하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따라 하며 사는 일의 다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은 몸이 시키는 일보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좋아한다.
마흔에 뇌종양에 쓰러졌을 때까지도 몸은 나에게 쉴 것을 끝없이 종용했지만 나는 마음 따라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쉬지 않고 흘러 다녔다. 투병이 끝나고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을 때도 몸은 이미 고산병, 폐수종을 예고하고 있었다. 과욕은 마음에서 나온다. 결국 나는 등정은커녕 호흡곤란으로 도중에 산을 내려와야 했다.
쉰에 동티모르로 떠나는 일도 무모했다. 백지의 지도를 들고 그 나라로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출국 전에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결국 나는 말라리아에 걸려 후송돼야 했다. 마음이 저지른 일, 결국 몸이 수습한다. 앞에서 예를 든 마음행(行) 탓에 내 몸은 아직도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독감도 그렇다.
조그만 조심했으면 이 독한 열병은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연말의 허명이, 헛된 욕심이 새해 2주 동안 새 약속을 펑크 내고 말았다. 늦었지만, 새해 결심을 '몸이 시키는 대로 하라'로 정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닌 몸이 시키는대로 하며 살자. 마음이, 욕심이 떠나고 싶어도 몸이 붙들면 이제 남아 있기로 했다. 이젠 몸에 꼭꼭 숨어 살아야겠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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