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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청송 얼음골 빙벽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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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커버스토리 - 청송 얼음골 빙벽체험

입력
2011.01.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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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백의 아찔한 유혹… 원초적 도전을 유발하다

몇 년 전 일이다. 원정대를 따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다. 해발 5,400m. 일반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다. 그 고도 너머는 전문 산악인들만의 공간이다. 아이스폴이라는 거대한 빙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빙벽은 그렇게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경계 지었다.

감히 얼음벽을 넘을 수 없어 베이스캠프 텐트에서 밥만 축내고 있을 때, 원정대원들은 빙벽을 넘나들며 해발 6,000m, 7,000m 고지에 캠프를 구축하고, 공격 루트를 뚫고 다녔다. 사진을 담당하던 대원이 빙벽 너머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 깊은 탄식이 튀어나왔다. 사진 속 아이스폴 너머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흰 눈과 얼음만으로 둘러싸인 신비의 공간이었다. 내게도 저런 풍경을 맞닥뜨릴 기회가 올까. 그렇게 부러워만 하다 하산하는 길에 기필코 빙벽등반을 배워보리라 다짐을 했다. 아이스클라이밍은 얼음벽 너머의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곤 시간이 흘렀고 다른 많은 다짐들이 그래왔듯 빙벽등반도 점점 머릿속에서 흐려져갔다.

경북 청송의 얼음골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년 전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고, 혹시나 거대한 빙벽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음골로 차를 몰았다.

얼음골 절벽의 반쪽은 인공폭포가 얼어붙어 거대한 빙벽이 둘러쳐졌다. 나머지 반쪽엔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치러질 인공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모든 대회가 인공 구조물에서만 진행되다 보니 거대한 빙폭은 빈 채로 남아있었다. 후원사 로고가 덕지덕지 붙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기장과 대비돼 새하얗기만 한 빙폭은 더 눈부셨고 순정했다.

얼음골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 정오 무렵 마침내 빙폭에서 빙벽 체험이 시작됐다. 체험장이 준비되자마자 서둘러 달려갔고 순서를 기다렸다. 준비된 장비는 빙벽화로 불리는 동계용 중등산화와 12발 아이젠, 얼음을 찍어대는 아이스바일, 헬멧 등이다. 발에 맞는 신발을 신어보고 아이스바일을 들어 몇 걸음 걸어봤다. 발 밑에서 얼음이 잘게 부서지는 소리에 몸이 반응을 시작했다. 날카로울 만큼 짜릿했다.

허리에 로프를 묶었다. 빙벽 꼭대기 고정 로프고리에 로프를 걸고 한쪽 끝은 등반자가, 반대편은 안전을 책임지는 확보자가 몸에 감는다. 등반자에게 로프는 생명줄이고, 그 줄을 지상에서 쥐고 있는 확보자는 생명의 담보자다. 자칫 빙벽서 미끄러졌을 때 확보자마저 줄을 놓치면 등반자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준비를 마치고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계단 모양으로 굳어진 얼음 무더기를 지나 드디어 수직의 빙벽 앞에 섰다. 우선 팔을 크게 휘둘러 아이스바일을 찍는다. 쉽게 박히지 않는다. 몇 번의 도끼질 끝에 콕 박힌 아이스바일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이번엔 발의 아이젠을 푹 박아 디딜 자세를 갖췄다. 오른손 왼손 오른발 왼발 식으로 순차적으로 얼음을 찍어가며 올랐다.

생각보다 수월하다고 생각할 즈음 도끼질에 깨진 작은 얼음조각이 눈두덩을 스치는데, 따갑다. 깨진 얼음은 칼날과 같아서 얼굴을 감싸는 두건이 필수다. 다음 오른손으로 아이스바일을 찍는데 아뿔싸, 얼음벽과 떨어져 있는 고드름을 때리고 말았다. 와장창, 기다란 고드름이 부서지며 발 밑으로 떨어졌다. 순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시 올라보지만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한 팔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진다.

아이스바일을 들어 얼음을 쳐대는데 도통 박히질 않는다. 나태함의 저주이리라. 운동은 등한시하고 체중만 늘렸으니 말이다. 몸집은 풍선 부풀듯 불었는데, 팔의 근육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그 연약한 팔이 버틸 한계를 넘은 것이다.

팔을 좀 풀어보고 싶지만 수직의 얼음벽에 달라붙은 상황이라 여의치 않다. 손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발도 따라서 미끄러진다. 고지가 바로 저 앞인데.

생명줄을 쥔 확보자가 이제 됐다고 내려오란다. 듣던 중 반가운 목소리다. 만들어지지 않은 몸으론 그게 최선이었다.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 줄에만 의지한 채 빙벽에서 사지를 떼어내야 한다. 하지만 추락을 각오해야 하는 일. 경직된 팔 다리는 쉽게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빙벽을 퉁 밀치고 허공에 몸을 떠밀었다. 황망한 정신으로 그럭저럭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다.

올라갔던 빙벽을 다시 올려다 본다. 앞선 이들이 오르는 걸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그리도 높아 보이는지. 까마득했다.

청송=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주왕산 겨울폭포

춥다. 날씨도 춥고 마음도 춥다. 경북 청송까지 가는 길 생석회 푼 물세례를 예닐곱 번이나 맞아야 했다. 구제역이란 이름의 역병 때문이다.

을씨년스러워진 마음을 다잡고 주왕산(周王山ㆍ720m) 품에 안겼다. 주왕산은 전설을 이름으로 품은 산이다. 중국 당나라때 일이라고 한다. 799년 주도라는 이가 주왕이라 자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결국 주왕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신라 땅까지 쫓겨와선 이 산에 숨어들었다. 암굴에서 숨어 지내던 주왕은 결국 토벌군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돌이 병풍을 둘렀다는 석병산(石屛山)은 그 뒤로 주왕산이라 불리고 있다. 산 들머리 주방계곡 코스 입구에 있는 대전사(大典寺)도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에서 따온 이름이다.

주왕산은 우뚝우뚝 솟은 바위가 매력적인 돌산이지만 주방천, 절골계곡 등 유량 넉넉한 계곡들로 하여 더 아름답다. 얼음골에 인공폭포가 만들어낸 거대한 빙벽이 있다면, 주왕산 골골엔 돌산의 물줄기가 빚은 자연폭포가 또 아름다운 빙폭을 이룬다.

주왕산의 겨울폭포를 찾아 떠난 길. 깃대봉을 병풍 삼아 자리한 대전사를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신라의 왕위다툼에 얽힌 얘기를 전하는 급수대, 그리고 학의 사랑 이야기가 서린 학소대. 주왕산 기암 풍경은 학소대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닫는다. 학소대에서 한 굽이 기암을 돌아들면 제1폭포를 만난다. 사과를 쪼개듯 손으로 벌린 듯한 바위 틈으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둥글고 너른 웅덩이를 거대한 기암들이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다. 마치 바위 항아리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폭포도 웅덩이도 얼어 하얀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폭포는 겉만 얼어붙었다. 얼음껍질 속에선 세찬 물줄기가 떨어져 내린다. 이렇듯 매서운 엄동설한도 그 기운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제1폭포에서 15분 가량 더 오르면 작으면서도 여성스러운 제2폭포를 만나고 다시 15분 산길을 걸으면 주왕산에서 가장 웅장한 낙폭을 자랑하는 제3폭포를 만난다. 2단으로 된 폭포다. 물줄기는 바위 밑부분뿐만 아니라 옆구리까지 둥글게 파헤쳐놓았다. 긴 세월 얼마나 세차게 물줄기가 흘렀던 것일까.

폭포 중간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서 본 제3폭포 역시 낙수의 겉만 얼었고 그 안에선 콸콸 물줄기가 떨어졌다. 물 쏟아지는 소리가 얼음벽 안에서 목탁을 울리듯 공명해 퍼져 나온다. 물이 제 스스로를 얼음 껍데기로 싸선 겨울의 생명을 잇고 있는 소리다.

주왕산의 또 다른 빙폭을 주왕굴 앞에서 만났다. 학소대에서 산비탈을 타고 오르면 나타나는, 주왕이 최후를 맞았다는 주왕굴. 그 굴 속에 숨어있던 주왕이 굴 입구에 흐르는 물을 먹으러 머리를 내밀었다가 토벌군의 화살을 맞고 생을 다했다는 곳이다.

주왕의 최후를 전설로 담고 있다지만 굴의 규모나 생김새가 그리 눈에 띄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주왕이 마시려 했다던 그 물줄기가 얼음 주련을 엮어 굴의 행색을 얼마간 가려준 게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막상 굴 안에 들어와 밖을 바라보니 굴 구멍 밖으로 펼쳐지는 아늑한 풍경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동그랗게 굴 밖 공간을 감싸고 있다. 얼음커튼 너머엔 산중 비밀의 정원이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었다.

중원을 호령하며 큰 뜻을 펼치겠다던 남자는 좁은 동굴 안에 숨어 자신의 초라한 사념을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그의 곁을 저 풍경이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주왕의 절대고독을 달래주었을 풍경, 전설로 그 풍경 안으로 든 주왕의 풍경….

청송=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빙벽등반, 장비는 기본… 전문기관서 훈련 받아야

경북 청송의 얼음골은 한 여름 기온이 32도 이상 오르면 비탈진 돌무더기에서 얼음이 어는 특이한 골짜기다. 군이 이곳에 62m 높이의 인공폭포를 설치했고 이 인공폭포가 겨울엔 화려한 빙폭을 연출한다. 얼음골은 빙벽등반가들에겐 오래 전부터 이름난 곳이다.

매년 국내 빙벽등반대회를 열어왔고 그 덕에 올해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대회도 유치했다. 아시아에선 처음 열리는 세계 대회다.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5년간 계속 열리는데 빙폭이 아닌 인공 구조물에서 열린다. 빙폭의 난이도가 일정치 않아 순위를 매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빙벽은 자연폭포와 인공폭포로 나뉜다. 자연폭포 중에선 설악산의 토왕성폭포가 상징적인 존재다. 빙벽 높이가 320m나 된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 관리공단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춘천의 강촌 구곡폭포도 천연 빙폭으로 이름 높다.

인공폭포는 얼음골 외에 충북 영동 용산면의 인공빙벽, 강원 원주의 판대빙벽, 인제군 용대리의 매바위 빙벽 등이 유명하다. 영동의 빙벽은 올 시즌 구제역 때문에 폐장됐다.

빙벽등반은 하고 싶다고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다. 코오롱등산학교(02-3677-8520) 같은 등산학교나 전문기관의 훈련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좋다. 등산학교에선 장비도 빌릴 수 있다. 코오롱등산학교의 원종민씨는 "암벽등반을 배운 경험이 있으면 빙벽 등반이 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빙벽을 타기에는 좋은 빙질을 유지할 수 있는 영하 5도 이하의 날씨가 좋다. 떨어지는 낙빙에 대비해 헬멧은 필수다. 얼음을 찍고 올라가는 아이스바일, 12발 아이젠, 동계용 중등산화가 필요하고, 깨진 얼음이 얼굴에 부딪는 것을 막는 두건 등도 필요하다. 등반자가 많은 곳은 가급적 피하고 낙빙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낙빙이 생기면 "낙빙"이라고 크게 외쳐 밑에서 오르는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타인이 등반하는 곳을 추월하거나 하강해선 안 된다. 등반 전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트레킹 팁

순백의 설산 산행엔 색다른 묘미가 있다. 최근 강추위 속에서도 설산에 올라가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설산뿐 아니라 겨울 산행에서는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겨울 산행을 위한 신발의 핵심은 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보온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등산화는 특수 원단을 사용, 외부 마찰과 찢어짐, 마모 등을 방지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가볍다. 빙벽을 오르려면 12발 아이젠이 필수인데, 이 아이젠을 착용할 수 있는 등산화는 따로 있다. 등산화를 사기 전 필요한 아이젠을 착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도움말 노스페이스

■ 여행수첩

청송은 경북 내륙에 깊숙하게 들어앉았다. 그래서 길이 멀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안동시내를 거쳐 34번 국도를 타고 달린다. 진보에서 31번 국도를 갈아타고 남으로 가면 청송읍을 지나 주왕산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난다. 주왕산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얼음골을 지난다.

구제역과 겨울 산불예방을 위해 주왕산의 일부 코스가 통제됐다. 월외에서 금은광이 가는 코스, 절골코스 등이 막혔고, 내원마을도 출입이 금지됐다.

장작불 구들장이 그리운 이들에겐 청송 파천면 덕천리의 송소고택을 권한다. 청송 심씨 집성촌에 있는 1880년대 지어진 99칸의 대저택으로 체험객을 위해 일반에 개방됐다. 방 가격은 크기에 따라 1박에 5~20만원. www.송소고택.kr (054)874-6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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