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한 분이 점잖게 웃으며 등장했다. 은사님을 모셨나 했다. 그런데 웬걸, 고향에 눌러 살아온 동창들은 그 노인에게 너나들이는 물론, 뒤통수까지 때리는 발칙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수년 전 고향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기모임에 졸업 30년 만에 처음 얼굴을 내민 한 친구의 모습은 그렇게 변해 있었다. 허옇게 샌 머리부터 구부정한 어깨나 쥐어짜는 어조까지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초교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시골마을에 남아 농사 짓고 닭 키우며 동네 어르신들과만 어울리다 보니 덩달아 늙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삶의 여건에 따라 노쇠의 양상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했다.
■ 현재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나 노인복지법 등은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규정하고 있다. 고령자란 '신체적 기능의 퇴화와 함께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서 개인의 자기유지 기능과 사회적 역할 기능이 약화된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최근 '고령자란'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내놓은 정의다. 하지만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고령자 연령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망률이 크게 떨어지고, 수명이 급속히 늘고 있는 데다 장애 없는 건강한 고령자가 점점 많아지는 현실을 반영하라는 얘기다.
■ 정책적으로 노인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한 건 인간의 평균수명이 50세에도 미치지 못했던 19세기 후반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였다. 그런데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남녀 평균수명은 각각 77세, 83.8세이다. 단순 스케일로 따져도 19세기 후반의 65세는 오늘날 약 90세에 해당한다니 고령자 기준이 비현실이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심포지엄에선 개인차를 무시한 획일적 연령기준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재용 한국노화학회 회장은 "신체적, 정신적, 생물학적, 시대적, 사회경제적 요인 등을 포괄한 새로운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 고령자 연령기준 변경 논의는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더 늦추고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저출산 경향에 따라 폭증하는 고령인구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경제적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노인 일자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소홀히 하고 연령기준만 올리는 쪽으로 돌아가면 서민들에겐 재앙이 될는지도 모른다. 일자리도 없는데 노령연금 수령 시점만 늦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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