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자행한 반인륜 반인권 범죄에 대한 법원의 배상 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13일 하루에만 5건의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이 쏟아졌다. 그동안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기까지 고액 배상 판결이 많았다. 대표적 과거사 관련 사건만 따져봐도 누적 배상금이 2,200억원대에 달한다.
대법원이 이날 그동안 배상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지연손해금의 산정 기준을 조정함으로써 '천문학적 배상금' 판결 릴레이에 제동을 걸었다. "배상금도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인데, 너무 규모가 크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군사정권 시절 용공자로 몰려 사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의 유족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는 위자료와 이자로 99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던 원심을 깨고 배상액을 29억원으로 조정해 확정했다.
이처럼 배상액이 크게 줄어든 것은 재판부가 지연손해금의 산정 시작 기준을 종전의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에서 '사실심의 변론 종결일'로 바꿨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통상 위자료 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이자)은 불법행위 시점부터 발생한다고 봐야 하지만, 불법행위 이후 장시간이 흘러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실심 변론종결 당일부터 지연손해가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위자료를 산정할 때 이미 현재의 통화가치나 국민소득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에 지연손해금을 불법행위 시점부터 계산하면 이중 배상, 즉 과잉 배상이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조용수 사장 유족 등에게 지급되는 배상액은 원심이 산정한 99억3,000여만원(위자료 29억5,000만원 + 47년간 지연이자 69억8,000만원)에서 29억7,000만원으로 낮아졌다. 지연이자가 2,000만원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날 공안조작 사건인 '아람회'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 등 37명이 낸 청구소송에서도 "국가는 86억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며 배상액수를 조정한 뒤 판결을 확정했다. 아람회 사건의 경우 항소심에서 200억원 배상 판결이 나왔었다. 같은 이유로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서창덕씨와 가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배상액이 2심의 14억여원에서 6억4,000여만원으로 줄어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이날 '울릉도 간첩단 사건' 소송에서도 6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임범석 부장판사)는 이날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3명과 가족 등 3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약 7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도 이미 1심에서 500억여원 배상 판결이 내려진 다른 민청학련 관련자 사건과, 84억여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진 '진도 간첩단 사건' 등과 함께 항소심인 서울고법에서 지연손해금이 재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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