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건 변론을 도맡는 등 한국 민주화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돈명(李敦明ㆍ사진) 변호사가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192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3회)에 합격해 판사로 근무하다 196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고인은 이후 황인철ㆍ조준희ㆍ홍성우 변호사 등과 함께 인혁당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사건, 청계피복 노조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등 1970년대 이후 주요 시국사건 변론을 맡아왔다. 수배 중이던 이부영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을 숨겨줬다는 이유(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8개월간 수감될 당시 "나는 불의에 쫓기는 한 마리 양을 보호했을 뿐, 결코 범인을 은닉했다는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고인의 최후 진술은 후배 법조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고인은 당시 반복된 투옥에 따른 심장병으로 평생 병고에 시달려야 했다.
고인은 1986년 한승헌ㆍ홍성우ㆍ조영래 변호사 등 인권변호의 취지에 공감하는 인사들과 함께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는데, 이 모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모태가 됐다. 이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 조선대 총장, 한겨레신문 상임이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상지학원 이사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고인은 최근에는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로 재직했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법조인이 가야 할 길을 몸소 보여준 선배였다"며 고인을 기렸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일(전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 사장)ㆍ동헌(위아래구조기술사 사무소장)ㆍ사헌(미국 거주)씨와 사위 양원영(전 휘문고 교장)ㆍ서해준(전 다우케미칼 상무)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4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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