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한나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은 지 이틀 만인 12일 사퇴했다. 지난 10일 한나라당이 사퇴를 촉구한 뒤 곧바로 입장 표명을 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이틀이라는 시간을 버틴 셈이다.
정 후보자가 사퇴 표명을 미룬 배경에는 청와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여당의 압력에 굴복해 곧바로 사퇴해버리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운영에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퇴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대립각을 세운 상황이기 때문에 당청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행보였다는 해석도 있다. 또 정 후보자가 즉각 사퇴할 경우 공세의 타깃이 곧바로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청와대의 입장도 고려했을 수 있다.
물론 정 후보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사퇴가 불가피하지만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즉각 사퇴한다면 그 동안 제기된 재산 증식과 민간인 불법사찰 관여, 부동산 투기, 학위 취득 과정 의혹 등을 고스란히 인정해버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후보자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두루미는 날마다 미역을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는 성현의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 자리를 떠난다"고 밝혔다. 자신의 진정성과 진면목을 외면한 데 대한 서운함을 밝힌 것이다.
그는 이어 "경력과 재산, 사생활 문제 등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철저하게 유린되는 데 개탄과 비애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기회조차 박탈한 점에 대한 항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정 후보자는 회견에 앞서 법무법인으로부터 받아온 자신의 급여 명세표를 배포했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사퇴문은 언제 작성했는가.
"오늘 새벽에 썼다."
-사퇴 결정 전 청와대와 의견을 조율했나.
"오늘 아침에 청와대에 통보했다. 이전에 의견 교환은 있었지만 (사퇴는) 스스로 결정했다."
-할 말이 많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가.
"제 급여 명세표를 배포했는데 (법무법인 재직 당시인) 1∼7월 매월 3,000만원의 수수료를 받았고 퇴직할 때 실적에 따른 상여금을 받았다. 다만 액수가 서민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큰 액수라 곤혹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30여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 급여와 변호사로 출발하는 사람의 급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민간인 사찰을 보고했다는 문건이 있었는데.
"문건의 출처는 알지 못한다. 민정수석 자리가 한가하게 사소한 사건을 보고받을 자리가 아니다. 결단코 총리실에서 조사한 사실이 민정수석실에 보고되지 않는다."
-현재의 심경은.
"홀가분하다. 집착을 떨쳐내 버리니 마음이 편하다."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직도 그만 두는가.
"오늘 퇴직할 것이다. 감사원장 후보자에서 사퇴했는데 그대로 있는 게 옳지 않은 것 같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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