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는 포퓰리즘인가'라는 한국일보 12일자 기획 기사가 나간 뒤 건강보험공단이 담당 기자에게 항의성 하소연을 해왔다고 한다. 건보공단이 마치 기관 차원에서 무상의료 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기사가 쓰여 곤혹스럽다는 취지였다. 기사는 "무상의료를 꼭 포퓰리즘으로 볼 수는 없으며, 80% 무상의료는 적절하다고 본다"는 공단 관계자의 말을, '포괄수가제'도입 등 의료제도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 소개했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취재결과 공단의 여러 관계자들이 비슷한 견해들을 갖고 있어 사실상 공단의 입장으로 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보도가 나가자 보수와 진보,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한테서 공단으로 항의와 격려의 엇갈린 전화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현 정권과 여당, 보수진영이 한 목소리로 민주당의 '무상' 복지 시리즈에 '포퓰리즘'딱지를 붙여 공격하고 있는 판에 정부 산하기관이 딴 소리를 낸 것처럼 비쳤으니 공단으로선 속내야 어떻든 입장이 곤란하게 된 것이다. 반면, 몇몇 진보단체 관계자들은 "공단이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정말이냐"며 반색했다는 후문이다.
바야흐로 무상 복지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초장부터 색깔공방이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 같아 염려가 앞선다. 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어느 잣대로 비교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다. 국내총생산(GDP)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중(2009년 7.5%)은 OECD평균(19.3%)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전체 의료비 가운데 본인부담 비율(2007년 35.7%)은 OECD 30개국 가운데 공공의료제도가 미비한 미국을 빼고는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이는 선진국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소득과 같은 수준일 때와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보수 논객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만 성장하면 복지는 자연히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또 지난 10여년 간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중산층의 붕괴와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를 통해서 목도한 바다.
사실 한나라당도 복지 확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들이 한결같이 복지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한국형' 복지니, '맞춤형' 복지니 브랜드는 그럴듯한 데 내용물이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무상 복지 방안을 무조건 '포퓰리즘'으로 매도할 게 아니라 복지 확충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당의 브랜드인 '무상'복지도 정치적이긴 마찬가지다. 무상의료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선진국 수준인 80~9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인데, 100% 무상도 아닐뿐더러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내고 돌려받는 것을 무상이라 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무상 브랜드가 민주당에게 반드시 득이 될지도 알 수 없다.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무상복지를 반기지만, 어떤 이들은 지난 세기 전체주의 국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수사로서는 간명한 게 효과적이지만, 생산적인 논쟁을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이고 정책적인 표현이 좋다. '의무 급식'이나, 공공의료 확대 또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같은 말은 어떤가. 복지 논쟁에 앞서 말부터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다.
김상철 정책사회부장 sc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