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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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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입력
2011.01.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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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항상 올해는 진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작년보다 더 나은 논문을 쓰고, 누가 보더라도 생각이 깊어졌다고 무릎을 칠만한 글을 써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결심은 게으름과 무능, 그리고 많은 논문 편수를 요구하는 연구 환경 등을 핑계로 항상 그 해 말까지 유예되기 일쑤다. 어김없이 해를 넘기고 다시 새해가 오면 또 진짜 공부를 다짐하곤 한다.

작년에 미국 동부 대학에서 열린 동아시아 학술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전 세계 동아시아 전공학자 수백 명이 모여 동아시아 문학과 역사, 철학, 사회과학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말 그대로 학문의 경연장이었다. 1년에 한번씩 미국 주요 도시의 중심 대학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에 불원천리하고 참가한 이유는 말로만 듣던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학자들을 직접 만나 생각을 듣고 이야기도 나누어 볼 요량이었다.

학회 참석 목적은 그런대로 충족되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수확을 올리기도 했다. 학술대회의 흥미로운 연설 때문이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특강을 마련하였는데, 연사는 참가한 모든 학자들 중의 학자라 불릴만한 중국의 중견 인문사회학자였다. 그의 전공은 중국문학이었지만 강의는 문학에 머물지 않고 역사와 철학을 넘나들었고, 중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인 학문의 질문들에 답변하고 있었다. 전통 중국 문화와 사상의 정수를 간파한 후 근대 세계가 야기한 각종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었다.

전통과 근대를 꿰뚫고, 근대 이후의 가치들을 모색하는 그의 통찰력은 필자를 포함하여 학회에 참가한 모든 연구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분명 박수 갈채를 받을만했다. 사실 그가 1년에 여러 편 논문을 썼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다. 영어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들어본 일이 없다. 특강 당일의 영어 또한 전혀 유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강연이 감동을 중요한 준 이유는 강의 내용이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진짜 공부였던 것이다.

그는 서양의 유명학자들을 인용하였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중국의 고전들을 탐구하고 있었지만 훈고(訓詁)에 그치지 않았다. 소화되지도 않은 외국 인명을 나열하는 대신에 그는 서양의 학문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화려한 한문 실력을 자랑하는 대신에 고전을 새로운 독해와 철학으로 가공하여 오늘날의 지혜로 변용시켰다. 비록 영어로 글을 쓰지 않고 수많은 논문 편수를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구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요즘 한국의 대학은 수많은 논문을 양산하는 공장과도 같다. 학문을 비즈니스 하듯이 무슨 '사업'이라고 부른다. 사업에 공모하는 계획서와 결과보고서는 오랫동안 고민한 성찰의 온축이라기보다, 이런 저런 지식과 정보들을 수집하여 단기간에 짜깁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질 보다는 양을, 내용보다는 형식을 강조할 뿐이다.

17세기 조선의 대학자 윤증(尹拯)은 공부에서 질적인 깊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이가 들어 학문에 입문한 어떤 이가 공부의 부족을 걱정하자, 윤증은 많이 공부하기보다 깊이 공부할 것을 당부하였다. 많은 것을 공부하지 못했다고 걱정하지 말고 한번 읽은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자라도 소홀히 지나치지 않고 숙고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때만 진정 학문이 발전한다는 충고였다. 진짜 공부는 많은 논문 편수가 아니라 사색의 통찰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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