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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의 물리학/ 될성부른 스타는 떡잎 시절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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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의 물리학/ 될성부른 스타는 떡잎 시절 결정된다

입력
2011.01.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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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장 29절이다. 미국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 구절을 인용해 ‘마태복음 효과’란 말을 만들었다. 이미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얻어 성공한 사람이 지위가 더 높아지거나 돈을 더 많이 벌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좀더 많은 사람이 마태복음 효과를 경험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택과 집중’보다 ‘풀뿌리’ 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물리학이 그렇게 조언한다.

스타 배출 원동력은 초기지원

정우성 포스텍 기술경영대학원 교수와 미국 보스턴대 유진 스탠리 교수 공동연구팀은 한국 프로야구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미국 메이저리그 운동선수 약 2만 명의 활동기간과 출전경험, 성적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프로에 입문한 초기에 출전기회를 많이 얻은 선수일수록 더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성공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마태복음 효과가 스포츠 분야에도 적용된 셈이다.

연구팀은 또 모든 선수들의 초기 출전기회가 비슷하도록 데이터를 조정해 ‘스타 선수’가 얼마나 나오는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봤다. 그랬더니 평균보다 조금 더 잘 하는 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되긴 했지만 아주 뛰어난 스타 선수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박지성, 김연아, 이승엽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키울 수 있는 핵심 토대가 바로 초기지원임이 확인된 것이다. 정 교수는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시스템이 기량이 좀 처지는 선수들에게 출전기회를 많이 늘려주는 대표적인 초기지원 시스템”이라고 예를 들었다.

과학자들에게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연구팀은 과학분야 6대 국제학술지로 꼽히는 ‘네이처’와 ‘사이언스’ ‘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피직스 리뷰 레터스(PRL)’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논문을 실은 과학자 약 40만 명이 쓴 총 논문 수와 발표 시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지 5~10년 정도인 초기에 논문을 많이 쓴 과학자일수록 오래 활동하고 좋은 성과를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스포츠든 과학연구든 젊은 인력을 충분히 지원하는 정책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소리다. 실제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들도 연구 초기인 20~30대에 낸 업적을 인정받아 선정된 경우가 많다.

될 만한 떡잎 생각보다 많다

연구팀은 운동선수, 과학자의 데이터에서 성과와 그만한 성과를 낸 인원, 이밖에 다른 여러 조건들을 통계처리 해보면 흥미롭게도 ‘팻 테일(fat tail)’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통계 데이터 분포는 보통 가운데인 평균값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종 모양이 된다. 하지만 이번 데이터는 가운데가 아니라 양쪽 끝(꼬리)부분이 두껍게 그려졌다. 성과가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쁜 쪽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이승엽 같은 뛰어난 선수가 아주 드물 것 같아도 실제로는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 기회가 없어 빛을 보지 못한 ‘잠재적 스타’가 적지 않다니 희망적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연구팀은 초기지원이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풀뿌리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과거엔 스포츠에서도 과학연구에서도 인재양성은 될성 부른 나무를 떡잎부터 알아보고 선별해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뭔가 될 만한 떡잎’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정 교수는 “스포츠 분야에선 각급 학교에 관련시설을 갖추고 전문교사를 양성하는 등 저변을 확대하고, 과학 분야에선 20~30대 신진과학자에게 연구비 지원 혜택을 늘리면 성공하는 운동선수나 과학자를 더 많이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풀뿌리 방식의 초기지원은 더 많은 사람에게 마태복음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잠재적 과포화상태가 실패 불러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세계에도 물리학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실패의 법칙으로 미국 보험전문가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내놓은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1:29:300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산업재해로 중상자가 1명 나왔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다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큰 실패는 사소한 실패 여럿이 모여 일어난다는 얘기다.

큰 실패가 일어나기 직전 상황은 물리학에서의 과포화상태와 비슷하다. 설탕을 물에 계속 넣다 보면 계속 녹아 들어가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설탕물 그릇을 탁 치면 채 녹지 않은 설탕이 확 가라앉는다. 계속 녹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론 아니었던 게다.

사소한 실수나 사고가 쌓이는 상황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잠재적 과포화상태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 큰 실패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아무리 작은 실패라도 무심히 넘기지 말라는 게 물리학의 충고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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