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백발(白髮) 단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백발(白髮) 단상

입력
2011.01.11 12:07
0 0

춘추시대 오자서(伍子胥)는 차마 한 인간이 겪기 어려운 모진 고난들을 겪으면서도

좌절치 않고 대업을 성취함으로써 장부(丈夫)의 전형이 됐다. 그가 초기에 조국 초(楚)를 탈출, 오(吳)로 가는 과정에서 분노와 복수심, 피살의 두려움으로 단 며칠 만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춘추는 기록한다. 중국 남조시대 왕의 명을 받아 하룻밤에 천자문을 완성했다는 양(梁)의 주흥사(周興嗣)도 역시 순식간에 백발노인이 됐다. 프랑스 루이16세의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처형 하루 전 아름다웠던 금발이 온통 백발로 변해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 흰머리는 주로 노화에 따라 멜라닌 등의 모근 색소세포가 기능을 잃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통 40대부터 시작되나 아주 일찍부터 흰머리가 나는 경우엔 유전적 영향이 크다. 그 밖에도 내분비 이상이나 영양부족, 빈혈, 당뇨 등 특정 질병과 과도한 태양 자외선, 또는 방사선에의 노출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의 경우처럼 극심한 스트레스가 흰머리를 만든다는 데 대해선 의외로 부정적인 학자들의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노화의 주 요인임은 널리 인정되는 만큼 스트레스성 '급성'백발도 단지 속설만은 아닐 듯싶다.

■ 삼천장(三千丈ㆍ약 9km)이나 늘어졌다던 당(唐)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백발도 역시 스트레스로 얻은 것이었다. 평생을 거칠 것 없이 술과 시에 취해 세상을 주유하던 그가 말년에 세속의 정치다툼에 잘못 발을 담갔다가 생전 처음 옥살이와 귀양살이를 겪었으니 그 정신적 고충이 오죽했으랴. 유명한 는 그가 영어생활에서 풀려나 추포에서 거울을 보곤 부쩍 늙어버린 제 모습을 한탄해 지은 것이다.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_삼천 장이나 되는 흰머리 길이/근심으로 한 올 한 올 길어졌으려니….

■ 이른바 함바집 비리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고 안타깝다. 잠깐 사이 검은 머리카락은 간 곳 없고 눈썹마저 희끗희끗해졌다. 경찰총수에서 하루 아침에 피의자로 전락한 신세를 아마 가슴 치며 한탄하고 자책했으리라. 몇 년 전 국민의정부를 좌지우지하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구속된 지 얼마 안돼 백발노인으로 변한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다. 두 사람 다 평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던 얼굴이었다. 성경 잠언에서는 백발을 '의롭게 살아야만 얻을 수 있는 영광의 면류관'이라 했거늘.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