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소장 정종수)이 소장한 조선 왕실의 어보(御寶) 316점을 비롯해 어보를 싸는 보자기와 담는 상자 등 관련 유물 3,361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록이 나왔다. 1만3,800장의 사진과 연구 논문을 실은 3권짜리 방대한 책으로 총 2,204쪽, 3권을 합친 무게가 15.6㎏이나 된다. 문화재청이 펴냈다.
어보는 의례용 도장이다. 왕의 집무용 도장인 국새와 달리, 어보는 문서에 찍는 것이 아니라 왕실의 혼례나 책봉, 시호나 존호, 휘호를 올릴 때 만들어 상징물로 보관하던 것이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종묘에 있던 어보는 1994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2005년 다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돼 오늘에 이른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어보는 총 366점이 제작됐다. 그 중 43점은 망실됐고 323점이 남아 316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나머지 7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있다.
이번 도록에 실린 어보는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역대 왕과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ㆍ도조ㆍ익조ㆍ환조, 사후 왕으로 추존된 덕종ㆍ원종ㆍ진종ㆍ장조ㆍ문조 등 34명의 왕과 48명의 왕비, 계비, 세자와 세자빈의 것이다. 1441년에 만든 문종 비 현덕왕후의 어보가 가장 오래 됐고, 가장 늦은 시기의 어보는 1928년 만든 순종비 순명효황후의 것이다.
어보는 합금에 도금한 금보를 비롯해 은보와 옥보가 있다. 무게는 각각 3~7㎏으로 한 손으로 들기엔 무겁다. 바닥면에는 시호나 존호 등 글자를 새겼고, 몸통은 거북이나 용 조각으로 돼 있다.
어보는 보자기에 싸서 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 보관했다. 함은 내함인 보통(寶筒)과 외함인 보록(寶盝)이 있다. 보자기도 어보를 싸는 것, 보록과 보함을 싸는 것이 따로 있다. 보통의 안쪽은 홍색 명주나 무늬를 넣은 비단을 배접했다. 어보를 보자기로 싸고 함에 넣은 뒤 끈으로 묶는 방식은 정해진 법도에 따랐다. 내함인 보통에는 방충방습재로 다섯 가지 약재를 섞은 의향을 넣고, 외함인 보록 바깥면은 상어가죽으로 싼 다음 주칠이나 흑칠을 했다. 보록의 모서리에 박은 경첩의 장식이며 자물쇠에 새긴 문양, 내함의 안쪽에 배접한 비단과 보자기의 문양과 직조 방식 등은 왕실의 권위에 걸맞게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정성을 보여 준다. 보자기 비단의 문양은 구름과 보물을 짜 넣은 운보문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밖에 구름 사이로 학이 날고 매화나무 가지 아래로 직박구리가 노는 등 아름답고 상서로운 무늬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어보와 관련 유물을 조사하고 정리한 홍계옥 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어보와 관련 유물은 조선 왕실의 품격 높은 포장 문화와 가구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직물기술, 문양사, 염색 기법 등 왕실 공예의 정수를 보여 주는 것”라고 설명했다.
어보의 바닥면에 새긴 글씨는 시호 휘호 존호 등인데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칭호를 받으면 새기는 글자도 많아진다. 익종 비의 어보 글자가 116자로 가장 많다.
왕실이 하나의 공예품과 일괄 유물을 500여년에 걸쳐 제작한 예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고궁박물관은 이번 도록 작업을 통해 어보 조사를 마친 것을 계기로 어보의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어보는 본래 어책(御冊)과 함께 종묘에 모셨던 것이다. 어책은 왕, 왕비, 세자, 세자빈을 칭송하는 글을 옥, 대나무, 금판에 쓴 것으로 종묘의 신주 왼쪽에 어책, 오른쪽에 어보를 뒀다. 어책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어책에 대한 조사와 정리는 내년에 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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