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1번선의 줄감개를 자꾸 잡아당기면 마침내 끊어진다. ‘팅~’하는 타격음에 이어 여운이 묘한 정적 속에 감돈다. 거리의 악사는 마침내 자신의 기타를 부수고 만다. 냉혹한 자본주의 하에서 그에게 주어진 자유란 자신을 파괴할 자유뿐일지도 모른다. 극단 풍경(風磬) 의 모노드라마 ‘기타맨’은 적요 속 비명 소리로 남는다.
지독한 경쟁 체제에서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남은 것은 몸뚱아리와 기타 하나, 그리고 가끔 던져 주는 동전을 모아 둘 누더기 같은 모자 하나. 그는 칼이다. 도시의 틈새를 찾아다니며 기타 치고 노래해 번 돈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 완벽한 타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타인이 아니다.
중년 남녀의 헛헛한 사랑과 쓸쓸한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한 ‘가을날의 꿈’으로 2008년 한국에 첫선 보였던 노르웨이 극작가 욘 포세의 두 번째 대학로 상륙이다. 포세는 여전히 고독하다. 커다란 나무 기둥 하나만 덩그렇게 서 있는 첫 무대의 황량함이 심야의 텅 빈 술집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맥주 한 잔 시켜 놓고 하루 노동의 대가(동전)을 세어 보다 기타 치며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는 칼을 이제는 아무도 음유시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웃사이더가 된 음악 노동자일뿐이다. 배우 방성구는 넉살 좋게 기타를 쳐 가며 때로는 말로, 때로는 열네 곡의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버클리음대 출신의 작곡가 정지훈 덕에 무대는 때로 1인 뮤지컬 수준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그는 서성인다. 거칠게 말해 이 무대는 “내게 필요한 것은 맥주 두어 잔과 약간의 먹을 것을 보장하는 동전 몇 닢”이라던 유랑 악사가 일체의 기대와 희망을 던져 내고 신에 저주를 퍼부으며 완벽한 절망에 몸을 맡겨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은총,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가”라며 묻는 대목은 현세적, 기복적으로 변한 기독교 신앙까지 겨눈다.
어쩌면 감상의 위험마저도 있을 그 길에 연출가 박정희씨는 그에게 연민의 시선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나긴 독백 후 술집 문을 나서는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살을 에는 눈보라뿐이다. 그 너머에 완강히 버티는 것이 바로 일상이다. 시작과 끝 부분에 깔린 감미로운 왈츠는 타인의 불행과는 전혀 무관하게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일상성을 상징한다. 이 적빈의 기타맨을 더욱 비참하게 할 뿐이다.
칼은 이슬비에 옷 다 젖는다. 어느새 이만치 마음속으로 파고 드는 이 모노 드라마는 객석이 마음의 눈으로 읽어 줄 것을 낮은 목소리로 요청한다. 예를 들어 그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 말하는 것과 맞춰 조명은 극도로 천천히 낮춰지며 사연에 빠져들게 만든다.
기성 질서와 극단적으로 불화하는 비극적 세계관은 분명 포세의 몫이다. 그러나 관객들에게는 한없는 암울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배우와 연출자만이 보일 뿐이다. 16일까지 정보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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