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장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내용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리고 들리는 이야기대로라면, 이른바 '함바집 비리' 사건은 희대의 게이트가 될 수도 있다. 함바집 운영권 브로커 유상봉씨가 검찰에 구속돼 진술했다는 걸 듣고 있으면 기가 막힌다. 경찰청장을 지낸 인사가 형님 형님 하며 그를 따랐고, 내로라하는 건설회사 이사들은 그로부터 거액을 받고 이미 줄줄이 법정에 섰다. 경찰 출신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팀장은 이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표를 냈다. 유씨를 알았다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그는 전직 고위관료의 아들 결혼식 때 선물로 아파트 한 채를 주었다느니, 경찰 간부 몇 명쯤은 '지워버릴 수 있다'고 평소 떠벌리고 다녔다느니, 지방자치단체장실에 드나들며 억대의 돈을 밑밥처럼 뿌려놓고는 자신의 청탁이 먹혀들지 않을 때는 버럭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검찰의 수사는 이제 시작인 것 같지만 함바집 비리 사건이 또 하나의 '게이트'로 명명된다면 이건 참으로 너절하고, 또 민망한 게이트다. 게이트는 정부 혹은 거대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사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닉슨을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된 용어다. 한국에서도 1976년 박동선 사건 이후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만 해도 진승현, 정현준, 이용호 사건 등에 게이트란 수식이 붙었다.
함바집 비리 사건은 그러나 이들과는 모양새가 많이 다르다. 우선 유씨는 고향이 어디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성장과정이나 학력, 경력 등이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과거 한 정치인의 수행비서를 했고, 이십여년 전 룸살롱을 운영하면서 경찰을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내 중후반부터 함바집 운영권 브로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것 정도가 전부다. 그는 네댓 개의 가명을 사용하고 필요할 때마다 직함이 다른 명함을 찍어 다니는 등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그러면서 기존 인맥을 이용해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브로커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각에서는 게이트의 핵심이라기보다 사기꾼의 냄새가 농후하게 풍긴다.
문제는 그의 촉수에 걸려들었다는 인물들이 경찰, 공ㆍ사기업, 정ㆍ관계까지 우리사회 구석구석 안 걸친 데가 없을 정도로 망라돼 있다는 점이다. 유씨의 행각에서 우리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얼마나 치졸하고 또 허술하게 돌아가는지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는 것 아닌가.
참 오랜만에 '함바'라는 말을 듣고 소설 한 편이 떠올랐다. 꼭 40년 전인 1971년 발표된 황석영의 중편소설 다. 일본말인 함바(飯場)는 원래는 공사현장의 노무자 합숙소를 지칭했다. 황석영의 '객지'는 함바에서 시작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본다. …젊은 축들이 최십장의 아내에게 식사를 재촉하자 여자는 부엌문을 소리나게 닫고 안에서 짜증을 부렸다. "서기들이 오기 전엔 못줘요." 인부들은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전표 남은 것 있나?" "웬걸. 나두 다 썼네. 빚이 이천원일세. 일이 시작되기 전엔 더 이상 식사를 안 주겠다는데." "배부른 새끼들이 헐 지랄이 없었지." ….
"배부른 새끼들이 헐 지랄이 없었지." 이게 한국 리얼리즘 노동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의 전언이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지금도 유씨 같은 함바집 브로커는 웬만한 규모의 공사장 근로자들의 밥값에서 연 3억~4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뽑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우리 사회의 '배부른 새끼들'과 금품을 주고 받으며 그 운영권을 따냈다. 이 너절한 비리, 기왕에 말만 무성했다가 결과는 흐지부지되고 만 대부분의 게이트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파헤쳐지기를 바란다.
하종오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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