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에 맞지 않으면 코미디다. 코미디가 바로 우리네 삶 아닌가.”
프랑스 작가 에우제네 이오네스코(1909~94)의 연극 ‘대머리 여가수’의 국내 공연을 1인 3역(번안 연출 출연)으로 준비하고 있는 안석환(51)의 말이다. 50년대 프랑스 초연 당시 반(反)연극이라는 부제가 붙기도 했던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선두 대열에 서는 작품이다. ‘획기적’이란 평과 ‘연극도 아니다’라는 폄하가 공존했던 당대의 문제작이다.
극은 그야말로 부조리한 무대와 언어 유희의 연속이다. 관객이 운집한 텅 빈 무대에 제작진이 올라가 세트를 꾸미기도 하고 갑자기 출연진이 퇴장한다. “화재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소방대장도 등장한다. 화재 진압 대신 야생동물 보호에 나선 소방대장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가는 지렁이 두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 길을 막아선 채 물을 뿌리고 지렁이를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안석환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먼저 “특별히 얘기하려는 게 없다”며 “재미 있게 보고 집에 가다가 ‘나도 저렇게 살지 않나’라는 혼잣말이 나온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딴전을 피웠다. 그러더니 그는 표정을 확 바꿔 “때로 세상 고민을 혼자 다 진 것 같다가도 술 한잔 마시면 ‘내가 말한 것은 다 정의고 남의 말은 불의’라고 주장하는 우리 인생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부조리극이라면 심각한 표정으로 철학적 대사를 뇌까리며 관중을 긴장시키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일쑤다. 한국 관객에게 ‘부조리극은 곧 철학적 연극’으로 각인된 이유다. 하지만 안석환은 말장난과 객기로 가득한 무대, 유연한 분위기의 객석을 연출하며 “부조리극은 코미디, 즉 우리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머리 여가수는?”소방대장(안석환)이 말미에 가서 묻는다. “항상 같은 머리스타일이죠.”이웃의 답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우스꽝스런 자화상에 객석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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