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미쳤다. 그것도 비수기인 엄동설한에. 집주인들로부터 갑자기 수 천 만원씩 전세금 인상 통보를 받는 세입자들은 나갈 수도, 그렇다고 눌러 앉을 수도 없어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작년부터 계속되어온 전셋값 고공행진이지만 연초 물가 급등과 맞물리면서, 서민가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언제까지 이럴 건지, 전셋값 미스터리를 진단해봤다.
뭣 때문에 오르나
1억5,000만원 하던 전세가 순식간에 2억원까지 오르는 비정상적인 상황. 전문가들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전세시장이 이성을 잃은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은 중소형 주택의 공급부족이 문제다. 그 동안 건설사들이 작은 집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소형 아파트 건설을 꺼려왔었는데, 그 결과 가장 전세수요가 많은 중소형 주택의 물량부족으로 이어져 결국 전셋값이 뛰게 됐다는 분석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서민층이 선호하는 1억5,000만원~2억원대 전세가 한번에 50%씩 오를 수 있는 것은 수요자가 재계약이나 이사 등을 고려해 환금성이 높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기형적 쏠림현상 탓”이라고 설명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지난해 17만 가구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주택이 입주를 시작했지만 계약해지와 준공후 미분양 등이 많아 실제 주택공급 효과는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요-공급분석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현장에선 오히려 집주인들의 ‘보상심리’를 지적하고 있다. 전세계약 기간은 보통 2년. 그런데 2년 전인 2008년 말과 2009년 초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대부분 전세보증금이 동결됐고, 일부는 내려가기도 했다. 결국 그 때 못 올렸던 부분까지 더해, 이번에 대폭적인 전세금 인상이 이뤄지고 있으며 군중심리적으로 호가상승 경쟁이 붙게 됐다는 것이다. 전세가 더 오를 것이란 불안심리도 비이성적 전세호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의 종말인가
최근 전세난의 원인 중 하나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대거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물량 부족과 전세가격 상승을 가져왔다는 것.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난을 이런 전세 중심의 주택임대차 구조가 월세 중심의 구조로 변화하는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 외국은 대부분 매달 임차료를 내는 월세방식이다. 고금리 시절에는 목돈(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거나, 집을 넓혀가는 종자돈으로 활용할 수 있어 집주인들이 전세를 선호했지만, 사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으며 월세가 오히려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지금의 월세 계약은 교섭력이 큰 쪽(집주인)에 이끌려 임차인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것으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소형주택 수급난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에도 월세 계약이 늘어난다면 그땐 진정한 트렌드 변화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덕 소장은 “앞으로 임대차 시장에 수요가 늘어나면 월세 중심으로, 반대로 수요가 줄어들면 전세가 중심이 되는 주택임대차 시장의 주기적 변화가 예상된다”며 “이런 반복 과정을 통해 전세가 자연스레 월세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연구위원은 “전세시장 불안에 따라 늘어나기 시작한 월세중심의 계약 트렌드가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주택임대 계약도 월세가 전세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언제 얼마까지 오를까.
오름폭과 시기는 전문가들마다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시장 관계자들은 비싼 전세를 주느니 차라리 주택 매매로 돌아서는 시점, 즉 일정 수준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되는 수준까지가 전세가 상승의 한계로 보고 있다. 지역마다 단지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 수도권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율이 70~80%가 넘어가면 상한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는 전국 평균 57% 수준.
이 점에서 전세난이 1년 정도는 더 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박원갑 소장은 “전세난이 끝나는 시점은 중소형 주택 수급난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 연말에서 2012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며 “다만 연중 상시적인 전세난이 아닌 이사철마다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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