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에게 쏟아진 평가는 온통 조소 섞인 별명 일색. 영원한 대책반장이니, 관치의 화신이니, 모피아의 적자(嫡子)니…. 어디 이뿐 인가. 취임식에서 언급한 "금융위의 존재감만으로 질서가 바로 서게 하겠다"는 한 마디는 곧장 금융권에 'SD(김 위원장의 이니셜) 공포'로 전달됐고 저축은행 부실처리방향을 놓고는 옛날식 '물타기 수법'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맷집 강하기로 소문난 김 위원장이지만, 확실히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주요 대책의 총괄책임을 맡아 뚝심 있게 밀고 갔고 그래서 붙은 별칭이 '영원한 대책반장'인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카드대란 당시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기 위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 것인데, 왜 '관치 화신'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낙하산을 타지도 않았고 관료인맥에 기대어 별로 득 본 것도 없는데, '모피아'는 뭐고 '적자'는 또 뭐란 말 인가. 지금도 김 위원장으로선 내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고 되뇌고 있을지 모른다.
부분적으론 맞는 얘기다. 그는 분명 고비 때마다 어려운 문제를 아주 매끄럽게 풀었다. 미국 재무부가 2008년 리먼사태 때 금융부실을 어떻게 떠 넘겼는지 생각하면, SD식 부실접근법은 관치 축에도 못 낄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겐 넘치는 것 못지 않게, 분명 없는 게 있다. 김 위원장에 대해 시장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우려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첫째, 그를 보면 자꾸 과거가 떠오를 뿐 미래는 좀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과거 문제의 해결사로만 보이지, 비전ㆍ청사진 같은 미래 설계자 모습은 연상되질 않는다는 얘기다. 그저 이미지 뿐일 수도 있지만, 금융선진화를 외치는 G20 모범국의 금융당국 수장에게서 미래 아닌 과거가 자꾸 생각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효율은 가깝고 원칙은 멀어 보인다. 이번 저축은행 부실해법도 그렇고, 지금까지 정부의 문제접근방식 자체가 대체로 그랬지만, 그래도 금융이 정도(正道)로 가려면 더 이상 '저비용-고효율'만을 미덕으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셋째, 소통 보다는 지시가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가 실무관료 시절 현안을 놓고 금융권과 이견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이, "잘못되면 당신들이 책임지겠는가"라는 식으로 금융기관들을 몰고 가선 더 이상 곤란하다는 얘기다. 시장질서를 바로 세우는 금융당국의 존재감은 때론 공포에서도 나오지만, 결국은 신뢰와 소통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평가가 이렇다면, 김 위원장이 이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과거보다는 미래, 효율보다는 원칙, 지시 보다는 경청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리고 금융산업과 시장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고 본다.
작지만 하나만 덧붙이자면, 은행장 회의 소집 같은 건 더 이상 안 했으면 한다. '존재감'넘치는 그 앞에서 누가 과연 입바른 소리를 하겠는가. 지시 일변도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런 회의는 시대에도 맞지 않고, 게다가'군기반장'이미지만 더욱 각인시킬 뿐이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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