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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학술총서 600권째 책 출간… 그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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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학술총서 600권째 책 출간… 그 의미는

입력
2011.01.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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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계의 토질은 퍽퍽한 풍화토에 가깝다.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은 파고들 전적이 턱없이 부족함에 우선 아연해진다. 학(學)의 갈래마다 두터운 지식의 충적토를 이룬 이웃 나라들과 비교하면 누천년 역사를 내세우기가 면구스럽다. 1980년 시작된 대우학술총서 사업은 그 척박한 땅을 가래질하고 물길을 끌어 대 종묘할 밭을 만드는 작업이다.

83년 고 김방한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총서 시리즈의 1권 <한국어의 계통> 을 상재하고 28년 만에 600권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 (김경현 등 지음)이 이달 초 발간됐다. 본래 지난해 여름 발간될 예정이었으나 열여덟 명이나 되는 저자의 글을 취합하느라 601권 <철학의 재구성> , 602권 <한국 현대소설과 근대적 자아의식> 에 이어 뒤늦게 세상에 나왔다.

대우학술총서 사업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80년 200억원의 기금을 구 대우문화복지재단(대우재단)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재단이 기업에서 분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사업은 계속됐다. 현재 재단이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한국학술협의회가 출판 대상 연구물 선정을 주관한다.

총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최근 동향과 이론을 소개하는 '논저', 학술 연구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저서의 '번역', 그리고 학제 간 교류의 집약인 '공동연구'로 구분된다. 학술협의회는 매년 말 정례 연구지원과 출판지원 신청을 받아 대상을 선정, 최대 2년 6개월 동안 연구비를 지원하고 결과물을 총서로 엮어 낸다. 응용적 성격을 띤 연구보다 순수학문 분야의 연구를 우선 지원하는 것이 원칙. 책은 98년까지 민음사에서 나오다가 이후 아카넷에서 찍고 있다.

그간 1,800여명의 연구자가 재단의 지원을 받아 총 1,370건의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602권까지의 구성비를 보면 인문학이 220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자연과학(208종), 사회과학(127종), 다학제 간 연구서(47종) 순이다. <법의 제국> <세계화 시대의 서양 현대사> <근사록집해> <한반도 식생사> 등 학계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반향을 일으킨 책들이 대우학술총서 사업의 결과물이다.

재단은 2001년부터 대우학술총서와 별개로 서양의 고전들을 심도 있게 번역해 출간하는 대우고전총서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1권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앙리 베르크손 지음ㆍ최화 옮김)였다. 현재 27권까지 발간했는데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1ㆍ2> , 하이데거 <횔덜린 시의 해명> 등을 충실한 원전 번역을 통해 새로이 소개했다.

출판사 아카넷 관계자는 "팔릴 것을 기대하지는 않고, 낸다는 사실 자체에 보람을 갖게 되는 책들"이라고 대우학술총서를 얘기했다. 출판사가 밝힌 초판 발간 부수는 1,000부 수준. 외환위기 후 재단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한때 서른 권이 넘던 연간 발행 종수는 해마다 축소, 지난해는 일곱 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내용의 충실성은 꾸준히 유지돼 내는 책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등으로 선정됐다.

600권 <우리 학문이 가야 할 길> 은 세세한 학적 담론 대신 한국 학계가 나아갈 방향을 거시적으로 짚는 기획으로 채워졌다. 권두에 실린 대담 '우리 학문의 현상'은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김두청 고등과학원장, 이태수 인제대 철학과 교수가 머리를 맞대고 '2010년, 한국 학문'을 고민한 기록이다. 세 사람은 원전 번역 없이 이차적 연구서의 번역이 주류를 이루는 현상, 유행처럼 번지는 학문 융ㆍ복합의 문제 등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밖에 인문(창의적 통합으로서의 한국 철학ㆍ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사회(로스쿨 시대의 법학의 진로ㆍ장영민 이화여대 법학전문학부 교수) 자연과학(한국 물리학의 10년 발전 전략ㆍ정윤희 포스텍 물리학부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한국 학계의 과제를 점검하는 글이 실려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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