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당국이 잘못한 걸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
부실 저축은행을 대형은행의 모회사인 금융지주가 인수하고, 예보기금의 공동계정에도 돈을 내라는 당국의 압박에 대한 은행권의 속마음이다. 겉으로는 애써 웃으며 호응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하다.
일부에서는 금융지주가 군소리 없이 저축은행을 인수하려는 것은 각 지주의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올 3월 만료되기 때문이지, 저축은행 인수의 긍정적 효과는 기대할 게 전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도 금융지주사의 저축은행 인수가 지주사의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저축은행 부실에 칼을 대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부실자산을 사주며 부동산 시장 회복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사태를 방치해 온 전임자들에 비하면 진일보한 접근일 수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부실이 커지는데도 손을 놓고 있었던 당국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느닷없이 민간에 뒷처리를 떠넘기는 것은 누가 봐도 무책임하다.
굳이 시비를 가린다면 저축은행 부실이 경제의 위험 요소로 커진 것은 부도덕한 대주주의 방만경영도 원인이지만, 감독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 특히 2006년 '우량 저축은행'에 대해 대출한도 규제를 풀어준 게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후 대형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경기에 편승, PF 대출을 두 배로 늘렸다. 일부 저축은행은 PF 대출을 전체 대출의 70%까지 늘렸는데도 당국은 별 제재를 하지 않았다.
당국이 부실 저축은행을 영업 정지시키는 대신 민간에 떠넘기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공법을 선택하면 공적 자금을 조성해야 하는데, 임기 후반의 현 정부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시스템 안정을 명분으로 은행에 부담을 떠넘기기에 앞서, 당국은 정치권 눈치를 보며 사태를 악화시킨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금융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감독 당국의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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