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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논문 쓰느라 연구 못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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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논문 쓰느라 연구 못하는 사연

입력
2011.01.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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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의 글을 읽으면 학문 하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자(朱子)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에 달린 재래의 주해를 비판하고 자신이 새로 주해를 달았다. 이 책 <사서집주(四書集註)> 는 주자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이다. 이황은 주자의 호한(浩瀚)한 문집 <주문공집(朱文公集)> 을 읽고, 거기서 학문적으로 중요한 편지를 골라내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란 책자로 엮었던 바, 이 책자는 학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당대는 물론 후대 학자들의 주자학 이해에 큰 지남(指南)이 되었다. 이황의 편지 역시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조선 성리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문적 논쟁인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중후한 저작ㆍ 번역 사라져

이처럼 다양했던 학문적 글쓰기는 근대 이후 '논문'이라는 글쓰기가 도입되면서 차츰 사라지고 만다. 물론 엄정한 글쓰기를 표방하는 논문이 학문 발달에 크게 기여했던 것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10여 년 전부터 대학과 교과부 등 이른바 학문 연구를 지원한다는 기관에서 논문과 논문수를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채택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논문 이외의 글쓰기와 저작 형태가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글쓰기가 완전히 도태된 것은 물론이고, 중후한 학문적 저작 역시 사라지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저서를 쓴다 해도 불과 몇 주일 만에 쓴 논문 1편과 같은 평가를 받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번역도 마찬가지다. 고전으로 손꼽히는 동서양의 저술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각고의 노력 끝에 번역했다 해도, 그것 역시 대충대충 쓴 논문 한 편과 같은 무게로 평가된다. 도대체 이제 누가 번역이란 고역을 감당하겠는가. 사전을 만드는 작업 역시 엄청난 에너지와 세월을 소모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명감이 없는 한, 사전을 만들자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더욱 가관인 것은 논문의 편수를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유일한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처럼 성격이 아주 다른 학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일한 학문 안에서도 논문 생산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분야가 있는가 하면 참으로 어려운 분야도 있다. 때문에 학계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논문을 많이 쓴 학자를 반드시 높게 평가하지도 않고, 논문을 적게 쓴 사람을 반드시 낮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대학과 교과부는 왜 오직 논문과 논문의 숫자에 목을 매는가? 논문을 많이 쓰면 학문이 발전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거기다 논문의 숫자를 가지고 대학과 학자를 통제해야지 놀지 않고 연구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부터 시작된 논문 양산 정책은 긍정적 효과보다 그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 같은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 편으로 족한 논문을 몇 편으로 쪼개어 쓰고 높은 점수를 받는다.

연구와 학문 망치는 일

도대체 금덩이와 돌덩이가 구분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료를 찾고 진지하게 궁리해야 마땅한 주제는 돌아볼 겨를이 없다. 1년 동안 생산해야 하는 의무 편수를 허겁지겁 채우기 바쁘다. 연구와 학문을 망치고야 말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급과 승진과 연봉이 걸려 있는 일이다. 누가 누구를 나무란단 말인가?

학문에 경쟁이 없을 수 없고, 또 학문의 성과로서 적절한 양의 논문을 요구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학계와 학자의 자율에 맡겨야 할 일이다. 아마도 작금의 강제적 논문 쓰기와 논문 편수만 헤아리는 평가제도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학문의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와 대학에 바란다. 제발 이제 그만 좀 하시라. 논문 쓰느라 연구도 안 되고 학문에 전념할 수가 없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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