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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템플스테이는 국가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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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템플스테이는 국가적 자산이다

입력
2011.01.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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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을 대표하는 체험문화로 꼽은 템플스테이 사업이 출발하게 되었다. 월드컵을 맞아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올 것이었다. 당시 넘쳐나는 러브호텔 외에 건전한 숙박시설이 부족했던 형편에 갑작스럽게 호텔이나 다른 숙박시설을 확보할 방안이 없었다. 정부 당국은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러브호텔의 나쁜 이미지로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건전하면서도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골몰하던 정부에서는 불교계에 협조를 요청했다.

템플스테이 사업은 2002년이 다 되어서야 최종 결정이 났다. 불자들의 수련과 수행을 위해 준비된 사찰 공간을 외국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해 불교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불교 신자가 아닌 외부인, 특히 외국인들을 절에서 묵게 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흔쾌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정부에서 숙식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마뜩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단순한 숙박과 식사뿐 아니라 전통사찰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무척이나 흥미롭고 새로운 시도였다. 정부에서는 외국인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세면장과 화장실 시설 등을 개선하기 위한 비용 10억 원을 지원하는 예산을 책정했다.

그 때, 일 귀신이 씌었다고 불평할 정도로 일이 많았던 나에게 템플스테이 초대 사무국장의 소임이 떨어졌다. 템플스테이의 처음 계획과정부터 함께 했고, 사찰 수련회에 정통했던 까닭에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도, 조직도, 경험도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템플스테이 사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계종에서 사람을 파견 받고, 조계사 불교대학의 작은 공간을 사무실로 빌렸다. 예산도 정부 지원예산을 기본으로 조계종에서 편성했다. 이어 템플스테이 사업에 대한 홍보에 들어갔다. 참가 희망 사찰을 모집하고, 자원봉사자와 통역봉사자를 모아 교육과 연수를 진행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한글과 외국어로 된 가이드북도 제작했다.

파견자와 계약직 총 7명의 직원들은 정말 신들린 듯 일을 했다. 거의 매 시간마다 일의 진행을 점검하고 지적을 하는 나에게 직원들로부터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서로가 충분히 공감할 만한, 그리고 일을 하면서 형성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긴 별명이었다. 정말 원 없이 일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기뻐하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 별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곤 한다.

월드컵이 끝나고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은 900여명으로 집계됐다. 기대보다 많지 않은 숫자였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는 애초의 생각과 기대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주었다. 붉은 악마와 더불어 2002년 월드컵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국내외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방송을 내보냈다.

이후 10년 동안 템플스테이는 한국의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과 관광관련 홍보를 위한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성장하여 왔다. 그리고 국내의 어떤 프로그램보다 외국인의 관심과 참가율도 높다. 그런데 템플스테이가 이제 정부에 의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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