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개봉한 ‘백설공주’는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당시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웠고, ‘전함 포템킨’(1925)으로 유명한 옛 소련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1898~1948)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백설공주’는 기념비적 애니메이션이지만 완성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실사 장편영화 상영 사이에 틀어주는 ‘서비스’란 인식이 팽배했기에 장편 제작은 무모한 도전으로 비쳐졌다. ‘백설공주’는 아이들의 동심을 넘어서 어른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며 할리우드에서 애니메이션의 지위까지 바꾸어놓았다. 이미 미키마우스 캐릭터 등으로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연 월트 디즈니(1901~1966)의 혜안과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해’와 ‘헬로우 고스트’, ‘라스트 갓파더’ 등이 맞붙은 연말연초 극장가 흥행대전의 승자가 드러나고 있다. 세 편이 200만 관객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파했지만 가장 환히 웃는 영화는 ‘헬로우 고스트’다. 27억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로 100억원대의 두 영화와 어깨를 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헬로우 고스트’는 완성도나 화제성에 있어서도 ‘황해’나 ‘라스트 갓파더’에 많이 밀렸다. 피 말리는 격전 속에서 조용하게 제대로 실속을 차린 것이다.
‘헬로우 고스트’의 상업적 성공은 여러 의미를 던진다. 세밑과 새해엔 가족관객이 큰 힘을 발휘하고, 그들은 훈훈한 영화에 더 높은 만족도를 나타낸다는 점을 입증했다. 영화관람과 저녁식사로 이어지는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를 피비린내로 장식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도 삭막한 스크린과 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예고편이 전부”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라스트 갓파더’의 선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겨울 극장가 가족영화의 잠재력은 2008년 ‘과속 스캔들’의 깜짝 대박으로 이미 드러났다. 그런데도 충무로는 스릴러에 몰두하며 2009년 겨울을 춥게 보냈다. 이번 겨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작사의 안일한 기획과 대형 투자배급사의 경직된 의사결정이 안쓰럽기만 하다.
판타지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디즈니는 2차 세계대전 때 자진해서 정부를 위한 선전영화들을 만들었다. 미키마우스가 일본군을 격퇴하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그 발 빠른 상술이 참 놀랍다. 디즈니처럼 꼭 시류에 영합해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다. 가족영화가 흥행을 보장하지도, 완성도를 담보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파괴력이 재차 확인 됐는데 가족영화의 흥행 바람을 한 때의 이변으로 마냥 치부해선 안 될 것이다. 올 12월 개봉작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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