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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최장집의 '한반도 레알폴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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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최장집의 '한반도 레알폴리틱'

입력
2011.01.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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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와 강연 기사를 관심 깊게 읽었다. 무게가 남다른 진보 정치학자가 대중 앞에 부쩍 자주 나선 배경이 우선 궁금했다. 진보 매체들이 일제히 비중 있게 다룬 것도 그랬다.

언뜻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진보 쪽에 딜레마를 안긴 것과 관련 있는 듯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멘토 역할과도 무관치 않을 수 있다. 다만 막연한 짐작일 뿐이다. 또 대수롭지 않다. 그의 학문과 식견을 경외(敬畏)한다면, 언설 또는 담화에 담긴 뜻을 올바로 헤아릴 일이다.

이념ㆍ도덕 넘어선 현실주의 강조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남북문제는 레알폴리틱(Realpolitik), 현실 권력정치의 문제"라고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 정서나 감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남북한의 힘을 냉철하게 다루는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한반도 주변국의 힘의 균형, 동북아 국제질서를 포함한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이념 구분과 다양한 가치의 갈등을 넘어선 컨센서스, 국가정책 목표에 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인용한다. 그는 햇볕정책은 평화와 공존, 선의와 민족적 우애에 기초했지만 현실 권력정치를 다루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진보파는 안보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었으며, 보수파는 안보에 과도한 사명감을 보이며 평화와 공존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이다. 이런 결함과 한계를 딛고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처하려면 이념적 갈등을 이성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담화를 진보나 보수 쪽이 어찌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대표적 진보학자가 '레알폴리틱'을 화두로 삼은 걸 자못 색다르게 느꼈다. 진부한 용어가 도리어 참신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남북과 한반도가 얽힌 국제정치 문제를 이념과 가치를 앞세워 논란하는 데 이골이 났다.

레알폴리틱을 현실 권력정치,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로 풀이하면 흔히 부도덕한 '힘의 정치'로 들린다. 이상과 도덕을 높이 받드는 진보 학자에게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19세기 독일에서 레알폴리틱은 단순히 현실의 권력관계를 중시하는 정치를 뜻한 게 아니다. 레알폴리틱의 상징인 비스마르크가 그랬듯, 엄격한 현실주의 또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절제와 타협과 균형을 추구하는 정치와 외교를 일컫는다. 최 교수가 국내외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레알폴리틱을 역설한 뜻도 거기 있을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레알폴리틱을 통해 최초의 독일 통일을 이루고 유럽 정치 질서를 주도했다. 그 것으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국가 위상을 한껏 높였다. 비록 19세기적 민족주의와 강력한 사회 통제에 의지했지만, 후세 역사가들은 독일과 유럽의 평화를 이끈 탁월한 정치가로 평가한다.

이렇게 보면, 최 교수 담화를 크게 다룬 진보 매체들부터 엇나가는 모습이다. 햇볕정책의 한계와 진보의 잘못은 사소한 듯 치부하면서,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수의 잘못을 나무란 대목은 부각시킨다. 진보의 일관된 명분 때문에 짐짓 완고한 표정인지 모르나, 그런 자세로 북한의 행태와 국내외 환경 변화에 관계없이 햇볕에 집착하는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싶다.

중첩적 우호ㆍ동맹 추구해야

레알폴리틱의 냉철한 현실주의, 실용주의가 필요한 과제는 숱하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정교한 레알폴리틱 행보를 우리 사회는 이념과 도덕, 민족정서를 앞세워 재단하기 일쑤다. 나라 차이가 있을 뿐,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중국은 늘 무도(無道)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도식적 인식, 상투적 논리에 기대어 21세기 현실의 국익을 도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쯤에서 비스마르크 레알폴리틱의 진수(眞髓)를 상기할 만하다. 안보에 최대 위협인 프랑스는 단호히 견제하면서, 나머지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등 모두 주변 열강과 중첩적으로 우호ㆍ 동맹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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