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통계학자 프랜시스 갤튼(1822~1911)은 1906년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가축 시장에 찾아온 800명에게 각각 판돈을 걸고 특정한 소의 몸무게 추정치를 제출하게 한 뒤 가장 근접한 추정치를 제출한 사람이 판돈을 받는 내기의 결과였다. 사람들이 적어 낸 소 몸무게 추정치를 분석한 갤튼은 크게 놀랐다. 이들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로 실제 소의 몸무게(1,198파운드)와 1파운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는 집단의 지성이 개인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기치로 내건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의 성공은 21세기를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집단 지성의 현현(顯現)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위키피디아가 15일 출범(영어판) 10년을 맞는다.
브리태니커 넘어선 위키피디아
미국의 지미 웨일스와 래리 생어가 지식인 중심의 온라인 백과사전 누피디아(Nupedia)를 보완해 2001년 1월 15일 위키피디아라는 사이트를 만들었을 때 현재와 같은 성공을 예견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의 항목은 영어판을 기준으로 15일 만에 31개, 1년 만에 1만7,300개를 넘더니 현재는 350만개 이상의 항목이 올라 있다. 15만2,000여개의 항목이 올라 있는 한국어판(2002년 10월)을 비롯해 현재 278개 언어판 위키피디아가 운용되고 있다. 100만개 이상의 항목을 포함한 위키피디아는 3개(영어ㆍ불어ㆍ독어판)고 10만개 이상의 항목을 포함한 위키피디아도 35개를 헤아린다. 온라인지식사회의 제왕으로서 위키피디아의 위상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례는 미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의 2005년 12월호 기사다. 네이처는 당시 브리태니커사전과 위키피디아의 과학 항목의 정보오류를 비교, 위키피디아의 손을 들어 주기도 했다.
참여 개방 공유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누구나 글을 올리고 편집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의 출현을 촉발했다. 온라인 교과서인 위키책(wikibooksㆍ2003), 온라인 뉴스 위키뉴스(wikinewsㆍ2003), 비밀문서 공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ㆍ2006) 등이 대표적이다. 이희은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술논문에서조차 위키피디아가 정보의 출처로 사용되는 일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법조인들이 위키피디아의 정보로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논쟁이 되기도 했다"며 "정보의 분류와 배치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지식 권력을 형성해 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키피디아가 지식 체계로서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식의 민주화 VS 반지성주의의 확산
위키피디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평가는 상반된다. 개방성과 공유성에 주목하는 이들은 '집단 지성 시대의 도래' '지식의 민주화'라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정보의 신뢰성을 회의하는 사람들은 '반지성주의와 지적 포퓰리즘의 확산 도구'라는 낙인을 찍는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위키피디아는 지식 편집권의 엘리트주의를 깨뜨렸으며,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두드러진 특성인 실시간성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위키피디아의 지식이 요약되고 속화한 지식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고급이지만 써먹을 곳이 없는 지식보다는 실용적 지식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현대"라며 "수많은 편집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위키피디아 정보의 교정 작업은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시비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편 위키피디아가 영향력에 걸맞는 정보의 신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위키피디아의 공동 설립자인 생어가 위키피디아 정보의 수준과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2006년 네티즌의 기명기고를 받고 전문가들로 된 편집진이 운영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시티즌디움을 꾸린 것이 좋은 예다. 이런저런 시비 때문에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위키피디아재단은 2009년 생존 인물에 한해서는 편집자 승인을 거친 후 정보를 게재하는 사전검토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원인을 집단 지성으로 보는 관점을 비판하는 주장도 있다. 집단 지성이라는 용어는 대중을 정치적 변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좌파 엘리트들의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박성모 인터넷문화협회회장은 "집단이 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구 소련 체제 하의 집단 창작마저 긍정할 수 있는 용어"라며 "위키피디아 성공의 원동력은 집단 지성이 아니라 독립적 개인들의 네트워크 협업에 기반한 네트워크 지성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위키피디아는 창조성 자생성과 속류성을 동시에 지닌 대중의 양면적 속성을 반영한다"며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완전한 지적 평등의 세상이 올 것인지, 새로운 형태의 지적 권위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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