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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20주기 대규모 회고전/ 질박한 삶에 덧칠해진 해학…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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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20주기 대규모 회고전/ 질박한 삶에 덧칠해진 해학… 고독…

입력
2011.01.0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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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림 아니면 술이었다.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 달 내내 소금만 안주 삼아 드시곤 했다. 늘 혼자 외로이 술과 그림으로 보내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화가 장욱진(1917~90)의 큰딸 장경수(66)씨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삶은 그랬다. 남 부러운 서울대 교수직(1954~60)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 그림에만 전념했던 부친이지만 평화로운 자연도 그의 영혼을 위로하지 못했다.

외양만 보면 그는 요즘 각광받는 슬로라이프(slow life)의 선구자 같다. “나는 심플하다”고 외쳤던 것처럼 평생 덕소 수안보 신갈 등 한적한 곳에서 단순 소탈하게 살았다. 그림도 다를 바 없었다. 가족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의 소재를 작은 화면 속에 정감 있게 그려 낸 그 특유의 그림은 소박하면서 천진무구하다.

현대인에게 새로운 취향이 된 이 삶이 그러나 당대의 예술가에게는 온몸을 던져 버텨 내야 하는 생이었다. 그는 늘 “나는 그림을 그린 죄밖에 없다”고 읊조렸다. 그림 그리는 것이 죄가 되는 시대였으며 자연은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산업화에 무참히 파괴되는 공간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그러니까 한국 근대화의 역설적 현장에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웃음기 너머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스며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ㆍ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의 20주기를 맞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장욱진미술문화재단과 함께 그의 작업 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대규모 회고전을 14일부터 마련한다. 유화 60여점과 먹그림 10여점 등 70여점이 나오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덕소 시대(1963~75), 명륜동 시대(1975~79), 수안보 시대(1980~85), 구성(신갈) 시대(1986~90) 등 전 시기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종이에 그린 1951년작 ‘자화상’은 평화로운 황금 들녘을 거니는 양복 입은 신사를 그린 작품인데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신사의 풍채에서 어릿광대의 해학이 느껴진다. 특히 6ㆍ25전쟁 당시 고향인 충남 연기군에 피란 갔을 때 그린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가 어떤 식으로 전쟁과 가난, 고난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 버릴 작정이다”고 했던 말처럼 그는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작고하기 불과 열흘 전인 1990년 12월 19일 동해를 찾아 그렸던 스케치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1990년작 ‘밤과 노인’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작품이다. 흰 옷을 입은 노인이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이 그림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해 쓸쓸하다. 그동안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볼 수 없었던 미공개작인‘소’(1953) ‘반월’(1988) ‘나무’(1988) 등도 출품된다.

이번 전시에 맞춰 그의 영문판 화집도 출간된다. 지난해 박수근의 영문화집을 펴냈던 마로니에북스는 화집에 장욱진의 그림 101점 도판을 정영목 서울대 교수, 오광수 미술평론가 등의 평론 및 에세이와 함께 담았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은 장욱진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경기 양주시에 건설할 예정이다.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장경수씨는 “아버지의 그림이 자그마했듯 거대한 규모의 미술관보다는 조그맣고 아담하면서 포근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21일 오후에는 장경수씨의 특별강연이 열린다. 관람료 성인 3,000원. (02)2287_3500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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