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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소 죽어가면서 출산, 눈 못뜬 송아지도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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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소 죽어가면서 출산, 눈 못뜬 송아지도 결국은…

입력
2011.01.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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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가축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는 수의사, 공무원 10명 가운데 7명이 식욕부진, 불면증 등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정신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될 정도다. 살처분 현장에선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의사 및 담당 공무원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토대로 현장의 참담한 상황을 들여다봤다.

“살처분된 소가 죽어가면서 새끼를 낳더군요. 그 갓 태어난 송아지에 또 독극물(근육이완제)을 주사해야 하는 참담한 심정을 아십니까?”

5일 오후 4시쯤 경기 이천시의 한 축산 농가 앞. 오전에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 키우던 소 100여 마리의 살처분이 결정된 농가다. 흰색 방역복의 살처분팀이 농가로 들어섰다. 농가 100여m 앞에는 방역 초소가 세워져 분사식 소독이 실시되고 있었는데 영하의 추위로 약이 얼어붙어 주변이 온통 ‘소독약 눈더미’다.

살처분 팀은 농가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데 소의 경우 수의사, 담당 공무원, 방역관 등 13~23명, 돼지는 35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현장에서 이들은 ‘몰이조’와 ‘묶음조’ ‘투여조’ ‘운반조’로 나뉜다. 먼저 몰이조가 사육장으로 들어가 소들을 밖으로 몰아 낸다. 일부 소들은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버틴다. 특히 착유(搾乳)를 목적으로 기른 젖소들은 평소 방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몰아내기가 더 어렵다. 한 공무원은 “둔기나 회초리로 수 차례 때려도 무릎을 꿇으면 꿇었지 뒷걸음질 치며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이대로 끌려 나가면 죽는지 아는 모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끌려 나온 소들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끈을 이용해 머리 부분을 코뚜레 모양으로 고정한다. 그리고 일렬로 세운 뒤 수의사 2명이 번갈아 가며 ‘죽음의 약’을 주사한다. 근육이완제 0.1g을 혈관에 주입하면 15초 안에 ‘푹’ 쓰러진다. 여주에서는 임신한 암소에 근육이완제를 주사했는데 자궁이 이완되면서 새끼 소가 태어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이 새끼 소에게도 죽음의 약을 투여해야 했다. 당시 수의사는 “평소 냉정한 편인데 갓 태어나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송아지를 살처분할 때는 몸서리가 쳐졌다”고 했다.

죽은 소들은 차량에 실려 매몰 장소로 옮겨진다. 그런데 죽은 소의 위에 가스가 차면서 배가 풍선같이 부풀어 올라 매몰 직전 낫으로 찔러 가스를 빼야 한다. 죽은 소를 또 한번 죽이는 일도 끔찍하지만 제대로 찌르지 못하고 아랫배를 찌르면 일이 더욱 커진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내장이 터져 나오면서 피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공익 방역수의사는 “동물을 살리려고 6년간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죽은 소와 돼지를 구덩이에 차곡차곡 채워 넣고 흙을 덮는다. 간혹 전기충격으로 살처분된 돼지가 정신을 차리고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려 바둥대기도 한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구덩이 속으로 다시 밀어 넣을 때는 내 영혼을 묻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사료와 배설물, 짚단, 톱밥 등을 모두 소각해 함께 묻으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자식 같은 것들’을 땅에 묻는 축산농들의 마음도 찢어진다. 독한 마음 먹고 작업을 돕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통곡을 하거나 먼 산만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하고 마루에 앉아서 줄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울다 지쳐 “당신들(살처분 관계자)은 천국에 못 갈 것”이라고 푸념하듯 내뱉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현장에서는 먹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인근 식당에서 음식물을 방역초소까지 배달하면 살처분 팀이 초소까지 나가 받아 온다. 보온을 위해 밥과 국 등을 스티로폼 통에 넣어 오지만 추운 날씨에 금세 ‘냉국’이 된다. 고된 작업으로 무척 시장한데도 죽기 직전 금세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했던 송아지의 눈망울이 떠올라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의 작업이 끝난다고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농가를 찾아 이 끔찍한 작업을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관계자는 “한 달이 되도록 죽음의 현장에서 줄타기를 하다 보니 정신적ㆍ육체적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다”며 “구제역이 끝나면 직원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건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천=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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