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서울대 법인화가 시작될 것 같다. 서울대를 국립대의 위치에서 독립법인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야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기초학문을 소홀히 하거나, 등록금 인상을 가져오거나, 대학의 서열이 고착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이에 대해 정부나 서울대 당국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대학 서열화ㆍ불공정 경쟁 조장
법인화가 기초학문을 소홀히 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반면 등록금 인상 문제는 조금은 역설적이다.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장래 고소득자가 될 서울대생에게서 특별히 싼 등록금을 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다. 이것은 서울대 법인화의 기본 논리에 비추어 보아서 더욱 그렇다. 서울대 법인화의 논리는 한마디로 '경쟁'이다. 한국 제일의 대학이 세계 50위권에서 정체하고 있는 것이 국립대학이 갖는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사나 재정에 있어서의 자율성 결여와 관료적 경직성을 극복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인화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 법인화안이 정부 지원은 그대로 받고 인사와 재정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늘리게 되어 있으니 그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경쟁'이라는 논리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 지금 서울대가 하고 있는 경쟁의 대부분은 세계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에 세계화되어 있는 것은 일부 전공 교수들의 '국제학술지 게재 업적'뿐이다. 한국 대학의 경쟁은 대부분 국내에서 일어난다. 입학생 모집과 졸업생 취직, 교수 충원은 대부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대학의 발전을 위한 모금도 국내에서 한다.
국내에서의 서울대학교의 문제점은 경쟁력이 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점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법인화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그런 독점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우수 학생 모두 쓸어가고, 졸업생이 정ㆍ관ㆍ재계 요직 대다수 차지하고, 우수 교수 모두 데려가는 지금까지의 양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결국 세계적 차원에서의 경쟁의 논리로 시행하는 서울대학교 법인화가 국내에서는 독점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대학의 서열화를 격화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대학의 서열화 문제를 싫도록 경험했다. 대학의 서열화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입시 경쟁과 그에 따른 사교육 폐해의 주범이다. 서열화는 타교 출신을 교수로 뽑아서 혼혈함으로써 대학간에 건강한 학술 교류가 이뤄지는 것을 어렵게 한다. 타교 출신이 서울대 교수가 되면 뉴스가 되는 일은 이제 줄었지만, 그것이 억지로 쿼터를 설정한 결과라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한때 서울대가 한국 교육의 병리적 현상의 근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실상 서울대 폐교를 뜻하는 '국립대학 공동학위제'라는 안이 나온 적도 있다. 그것은 '하향평준화' 안으로서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설득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 나온 안이 서열화를 강화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모든 대학이 상향평준화 되게
물론 서울대 법인화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향평준화'가 답이다. 다른 대학들에게 적어도 일부 분야에서는 서울대와 대등한 경쟁력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서울대가 1위이고, 다른 대학은 2위를 놓고 경쟁하는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일부 이공계에서 불완전하나마 이런 구도가 만들어져 있지만, 전 학문에서 그런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정부다. 서울대 독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정부니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정부다. 어떤 문제든 맺은 자가 푸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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