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후. 휴일 관람객으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대공원 측은 당초 10일까지만 관람을 중지하려 했지만, 구제역 사태 확산에 따라 폐장을 25일까지 연장했다. 지금까지 쌓인 입장료 손실액만 수천만원, 피해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 같은 시간 강원 화천천(川). 가장 성공적 지역 행사로 자리잡은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곳. 추울수록 인파가 몰려야 정상이지만, 두터운 얼음 위엔 눈만 가득하다. 구제역 발생지역인 화천군은 축제 시작을 한 주 연기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1년 내내 축제 하나만을 바라보며 준비해왔던 지역상인들은 “피눈물이 난다”며 한숨만 쉬고 있다.
구제역이 전염병 차원을 넘어 경제적 재앙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조(兆)단위로 들어선 직접 피해액 외에도 국내 축산산업은 기반 자체가 붕괴했고, 각종 행사 취소와 관광객 감소로 지역경제 역시 초토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의 직간접 경제적 피해는 이미 2009년 신종플루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역 확산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금년 성장과 물가 목표마저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관련기사 2ㆍ3면
9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재정에서 투입된 비용은 살처분보상금과 방역장비ㆍ인력동원비, 백신접종비 등 현재까지 1조320억원에 이른다. 한 해 축산업이 벌어들이는 부가가치(2009년 7조원)의 약 15%가 구제역으로 인해 증발된 것.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한 축산업 피해액을 15년간 2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면서 “이번 충격은 FTA 수준을 이미 넘어선 셈”이라고 말했다.
장기ㆍ무형의 손실은 추산조차 힘든 상황. 이날까지 살처분 대상 가축은 128만두로, 국내 소ㆍ돼지(총 1,320만두) 10마리 중 1마리가 매몰되는 셈이다. 설령 불길이 잡힌다 해도 해당농가 및 지역은 적어도 수년간 축산업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축산업은 이제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해당 농가뿐 아니라 사실상 지역경제도 파탄에 이를 지경이다. 80건에 육박하는 겨울철 행사가 취소됐고, 관광객 급감으로 지역상인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화천군 관계자는 “산천어 축제가 무산된다면 지역경제가 입을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말했고, 안동군 관계자도 “하회마을 관광객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이 내수경기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경제성장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손영기 상공회의소 거시경제팀장은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억제되면 축산물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주말에도 구제역과 AI 바이러스는 그 기세를 한껏 떨쳤다. 8,9일 대관령과 포항 등에서 9건의 구제역이 신규 확진판정을 받았고, 전남 영암군 농장 3곳에선 AI가 발생했다. 정부는 인천ㆍ경기ㆍ강원ㆍ충남ㆍ충북 5개 시도의 모든 소를 포함, 추가로 120만두의 소ㆍ돼지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키로 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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