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유상봉, 유상준, 유상균.
- 직업: 급식업체 사장, 주택사업가, 금형제조업체 대표, 고속도로휴게소 운영자.
그는 카멜레온이었다. 알려진 이름만 3개, 직업은 상대에 따라 종횡무진 바꿨다. 주변에선 잘나가는 60대 노신사라 기억하는 그는 실은 이중, 삼중 생활을 하며 정치인, 고위 공무원, 경찰 수뇌부, 공ㆍ사 기업체 임원, 광역단체장 등에게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살포하며 마당발 인맥을 쌓아왔다.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의 브로커는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본명이 유상봉(65ㆍ구속기소)임을 드러냈다. 사기 행각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때로는 각각의 로비 대상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휴대폰을 10개 넘게 갖고 다니며 이름과 직업을 수시로 바꾼 탓에 이번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조차 그가 누구인지 헷갈렸을 정도. 유씨의 기상천외한 전방위 로비 수법도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ㆍ관계에선 그를 '유상준'으로 기억했다. 법적으로 본명을 사용하도록 돼있는 정치후원금을 낼 때조차도 그는 유상준이란 이름을 썼다. 유씨가 후원금 500만원을 낸 민주당 조영택 의원실 관계자는 "4, 5년 전에 유상준이란 이름으로 소개받았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정치후원금은 실명으로 내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가명을 사용할 경우 샘플을 뽑아 검사를 하지 않는 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씨의 금품 로비는 기부금 등 선의로 포장돼 이뤄졌다. 유씨는 2008년 7월 자신이 운영하던 ㈜원진씨엔씨 대표이사 유상준 명의로 경남 통영시의 문화예술단체에 1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급식업체와 고속도로 휴게소 몇 곳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진의장 통영시장은 "한 노신사가 아무 조건 없이 1억원을 기부했다"고 했고, 지역에선 중소기업의 선행으로 알려져 여러 언론에 기사화까지 됐다.
그러나 얼마 후 유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통영국제음악제 이용민 사무국장은 "이후 유씨가 통영시장 비서실로 전화를 해 시장에게 뭔가를 부탁했는데, 당시 시장이 '내 권한이 아니라 들어줄 수 없다'고 하자 무척 화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기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를 단체 주관 예술공연에 VIP로 참석시키려 했으나 민원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씨가 검찰에서 거액을 건네줬다고 진술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공기업 사장 C씨 측은 "아마 C 사장이 2007년경 유씨를 만났을 때 자신을 유상준으로 소개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C 사장이 돈을 받고 함바집이나 공사장 운영권을 준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에서 유씨는 '유상균'으로 통했다.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철 울산경찰청장은 6일 "유상균은 2005년 부산경찰청 차장 시설 박모 치안감의 소개로 알게 됐고, 그가 당시 캄보디아에서 주택사업을 하고 있고 1년에 한두 차례 국내에 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유씨는 금품을 거부하는 경찰에겐 직접 찾아가 책상에 돈 봉투를 던지고 사라지는 식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거나, 일선 경찰 간부들에겐 룸살롱 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간부는 "2009년 유씨가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 소개로 찾아온 뒤 현금 200만원을 책상 위에 놓고 가 되돌려 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남 목포 출신인 유씨는 주로 향우회와 자신의 사업기반이 있던 부산 등지에서 인맥을 확장했다. 전 공기업 사장 J씨는 "향우회에서 처음 본 걸로 기억한다. 자주는 아니고 2008년 이전에 몇 번 봤다"고 했고, 양성철 광주경찰청장도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해서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씨는 한번 관계를 맺으면 이를 사다리 삼아 다른 고위층을 소개 받는 식으로 인맥을 넓혀갔다. 어깨들을 데리고 다니며 '유 회장' '유 영감'이라고 불렸다는 증언도 있다.
7일 현재 사건과 관련돼 거론되는 인사는 건설회사 임원과 경찰 고위층, 일부 정치인, 공기업 대표, 전직 장관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유씨는 전 장관 L씨 동생 명의의 계좌에 2005년 5,000만원, 20007년 1억원을 각각 보낸 정황이 포착됐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전 장관 L씨는 "유씨가 동생과 돈 거래를 했지만 오히려 받을 돈을 못 받았다. 해명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기업 사장 C씨도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답을 피했다. J씨 역시 "반대급부로 줄 게 없어 나한테 돈을 줄 이유가 없다. 검찰에서도 연락 한번 안 왔다.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는데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강성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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